경전차는 단지 정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투 후반에 위협적인 암살자로 돌변하여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경전차로 2대 이상의 적 전차를 격파한 플레이어에게 수여되는 오를리크 훈장은 자신의 경전차보다 1단계 이상 높은 적 전차를 격파해야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훈장의 이름을 따온 실존 인물은 과연 어떤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을까요?

훈장 뒤에 숨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  


건축가를 꿈꾸던 소년


에드문트 로만 오를릭(Edmund Roman Orlik)은 1918년 1월 26일 폴란드 로고지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1937년 군에 자원입대하여 훈련과정을 거칩니다.

군사 훈련을 마친 후, 어린 시절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어 했던 오를릭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을 휘감고 있던 전쟁의 기운은 그를 평범한 대학생으로 놔두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이 1939년 폴란드를 본격적으로 침공하자 그는 2년 동안 계속하던 공부를 접어두고 그해 8월 전장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캄피노스 숲에서 벌어진 전투

폴란드 기갑부대의 준사관으로 소집된 오를릭은 1939년 9월 18일 거대한 삼림지대인 푸스짜 캄피노스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게 됩니다. 당시 오를릭이 지휘하던 전차는 TKS Tankette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경전차였습니다. 독일의 침공 당시 폴란드 기갑부대는 대부분 이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오를릭이 푸스짜 캄피노스에서 다른 두 대의 폴란드 TKS 경전차와 함께 임무를 수행할 때 그들이 가진 무기는 상대 독일보다 매우 초라했습니다. 두 대의 TKS 경전차에는 기관총만이 장착되어 있었고 오를릭이 탑승한 TKS에는 20mm 기관포가 장착되어 있어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지만 이들로 독일 전차를 상대하기엔 당연히 무리였습니다.

누가 봐도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전투에서 오를릭과 그의 부하들은 3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합니다. 2대의 Panzer 35 (t)와 당시 가장 강력했던 전차인 Panzer IV Ausf를 포함한 다른 몇 대의 독일 전투 차량 또한 파괴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하자 오를릭은 상대 독일 승무원들을 구출하고 그들을 포로로 생포합니다.

그들이 격파한 Panzer IV에서 심하게 부상 당한 독일 전차 소대장이 발견되는데 그의 이름은 빅토르 4세 알브레히트 폰 라티보르, 즉 독일 공국 왕자의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시에라코프 마을을 사수하라

그러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른 바로 다음 날 그의 부대는 시에라코프 마을로 보내졌습니다. 브주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독일 기갑 부대는 의기양양하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진군하고 있었고 이 길목에 있는 시에라코프 마을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독일군보다 수적으로 열세한 폴란드군은 시에라코프 마을에서의 전투를 훌륭히 치렀습니다. 20대 이상의 제11 전차연대와 제65 전차대대의 독일 전차를 격파한 것입니다. 이 중에서 오를릭은 Panzer 35 (t)를 포함한 7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명의 독일 승무원 또한 포로로 사로잡은 오를릭은 탄약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전투를 계속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공격은 맹렬히 진행되었고 그는 결국 후퇴하여 바르샤바 공성전에 참가하였습니다. 

바르샤바 수도 방위전

폴란드는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독일과 소련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바르샤바 방위전은 폴란드의 패배로 끝이 나고 결국 독일과 소련에 점령당했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가 점령당하는 동안 오를릭은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나치 독일이 패망하는 순간까지 싸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폴란드 정부는 오를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을 치하하며 폴란드 십자가 (Polish Cross of Valor) 훈장을 수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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