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전장에 흐르는 긴장감만큼 전쟁 중에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가우디가 여러분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잘 알려진 사건부터 와전된 일화까지, 가우디가 소개하는 역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가우디가 소개할 여덟 번째 이야기는 전쟁 명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고의 전쟁 명언 - 열 개의 이야기

전투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보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사일이 날고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하늘을 뒤덮어도 여전히 전쟁의 종결자는 개인 화기를 가지고 적진 속으로 돌격하는 보병들이기 때문이죠. 무인 정찰기와 로봇 병사가 전선에 투입되는 현재에도 여전히 적의 진지를 점령해야 하는 보병들의 사기는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장군치고 전선에서 명언하나 남기지 않은 사람은 없죠.

전투 출정을 앞둔 보병들의 젊은 피를 끓어오르게 하려고 장군들 대부분은 "조국과 동포를 위해 싸워라" 부류의 다분히 "돌격 앞으로"를 외쳤습니다. 병사들의 희생을 전제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승리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발언을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정치적 대의를 위해 보병들의 목숨을 소모품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승리는 너희들에게 달렸다. 미친 듯 싸워라" 부류의 ‘토 달지 말고 돌격’에 가까운 언변보다는 차라리 "내게 필승의 전략이 있다. 날 믿고 따라라!" 내지는 "열심히 싸우지 말고, 현명하게 싸우자" 부류의 강한 유대감 혹은 지휘관의 전략이 묻어나는 외침이 더 맘에 드는 스타일입니다.

최소한 전선 후방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살짝 인간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고, 지휘관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지휘관과 그들의 전쟁 명언 10개를 뽑아봤습니다.

1. 최고의 지휘관, 최고의 명언 - 미군 무어 중령

"여러분 모두를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과 전능한 하느님 앞에 이것만은 맹세한다. 우리가 전투에 투입될 때 내가 가장 먼저 전장에 앞장설 것이고 전장을 떠날 땐 내가 가장 늦게 나올 것이며, 누구도 남겨 두고 오지 않겠다.
전사했든 생존했든 우리는 모두 다 함께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의 실제 주인공인 해럴드 무어 중령(Harold G.Moore)이 베트남전 투입을 앞두고, 그의 대대 병력에 한 연설로 필자가 최고의 전쟁 명언으로 꼽는 말입니다. 그는 전멸 직전의 대대를 구해냈고,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 아군 진지를 무차별 폭격해 달라는 작전 코드)까지 요청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진지를 방어함으로써 아래 연설 내용을 현실로 구현해 낸 최고의 지휘관입니다.

2. 불패의 신화 - 이순신 장군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길목을 막으면 한 명이 능히 천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 30년 정유재란 시, 명량 해전에 앞서 엄청난 전력 차이로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의 전의를 불타오르게 하면서도 자신만의 전략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확신시킨 불후의 명언입니다. 10분의 1의 전력으로 임하게 될 명량 해전에서 그는 “나를 믿고 따르라. 내게는 너희들이 아직 모르는 필승 전략이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이 말로 전달한 것입니다. 명량 해전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아군 사망자 73명, 왜군 사망자 18,000명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3. 신의 아들 - 알렉산더 대왕 

"내가 두려워하는 적은 사슴이 이끄는 사자들의 무리가 아니라,
사자가 이끄는 사슴들의 무리이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왕 알렉산더 대왕.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고 왕성한 정복 활동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그가 남긴 이 말 또한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 말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한 말이라는 의견도 있기는 하지만, 이 말처럼 야전에서 지휘관의 중요성을 잘 표현한 말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병사 개개인의 무예가 아무리 출중하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라도, 유약한 지휘관이 이끈다면 결국 오합지졸과 진배없다는 뜻으로, 위 이순신 장군의 경우처럼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으로도 승리를 끌어내는 데에는 지휘관의 지도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잘 지적한 명언입니다. 

4. 황제를 꿈꾼 공화주의자, 시저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저가 갈리아(프랑스) 사령관으로서의 복무를 끝마치고 로마로 복귀할 때입니다. 그의 숙적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귀환을 두려워하여 암살할 계획을 하고 있음을 눈치챈 시저는 로마의 북쪽 경계 루비콘 강에서 큰 고민에 빠집니다. 당시 로마로 귀환하는 장군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즉, 군대를 대동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고 군대와 함께 이 강을 건너는 경우는 로마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단신으로 귀임하여 정적들에게 살해되느냐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반역자가 되느냐 갈림길에 서게 된 그에게 부관들이 결정을 묻자 그는 단호하게 외칩니다.

"The Die is cast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복귀한 시저는 내전의 중심에서 폼페이우스 세력을 몰아내고 로마의 사실상 주인이 됩니다. 루비콘 강가에서 그가 뱉은 이 짧은 문장은 그와 함께 평생 전장을 누빈 부대원들에게 지휘관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강하게 인식시켰고, 그 자신도 이 한마디로 명쾌하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5. 조선의 충신, 동래 부사 송상현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1592년 4월 14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동래성으로 몰려오자, 동래 부사 송상현은 방비를 굳게 합니다. 월등한 전력의 왜군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그렇지 않다면 길을 빌려 달라"는 왜군의 통보에 송상현은 위와 같이 대답했죠. 그 뒤 시작된 전투에서 그와 조선 병사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성이 함락되자 송상현은 관복을 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한 이후 최후를 마칩니다.

그의 이 답변에는 죽도록 싸우겠다는 의미뿐 아니라 조선과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깊이 배어 나옵니다. 즉, 우리가 항복하면 조선의 백성들이 저들의 말발굽에 짓밟힐 뿐만 아니라, 나아가 주권 국가로서의 존재 이유도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내포된 말로 왜군에게뿐만 아니라 휘하 조선 병사들에게도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잘 설명한 말입니다. 성이 함락된 후 그에게 감동한 왜군에 의해 동래 부사 송상현의 장례는 엄숙히 치러졌다고 합니다.

6. 프랑스의 정신 - 샤를 드골 

"우리는 전투에서 졌지만, 전쟁에는 아직 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합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과감한 진격과 아르덴 우회 전술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덩케르크에 포위되고 전멸 직전 간신히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프랑스군은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되어 독일과 전쟁을 계속하고 되고 프랑스는 결국 독일에 항복하여 북부는 독일이 점령하고, 남부는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가 통치하게 됩니다.

이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프랑스의 정신 샤를 드골 장군의 이 명언은 모든 프랑스인에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비록, 프랑스 본토는 점령당했으되 영국에 차려진 '자유 프랑스군'에 의해 프랑스인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프랑스의 정신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 말이었습니다. 이후 자유 프랑스군이나 프랑스 본토의 레지스탕스 지하 조직들은 드골 장군을 구심점으로 끈질긴 저항을 계속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를 되찾는데 큰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7. 죽음 앞에 선 유머 감각, 앤서니 C. 맥콜리프 준장

"븅신들~ (Nuts !)"

히틀러 최후의 도박으로 알려진 벌지 전투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수세에 몰리던 유럽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시도한 마지막 총공세였습니다. 북부 아르덴 산림 지역에 25만의 대병력을 집중시켜 한 방향으로 송곳처럼 돌파를 시도한 독일군에 의해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주인공 미 101공수 사단은 바스통 지역에 포위됩니다.

독일군 5개 사단 병력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항복 권유를 받은 101공수 사단 맥콜리프 준장은 답장으로 저 한마디를 적어서 보냅니다. 당시 맥콜리프가 독일군 항복권유에 대한 답변이었던 Nuts는 우리 말로 어감을 살리자면 위에 적은 대로 '븅신들' 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써 멋진 말로 둘러대지 않고, 간결하지만 정말 공수 부대다운 깡다구를 보여준 그의 답변 내용이 부대 내에 전해지자 모두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고 합니다. 전멸이 예상되는 포위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부대원들의 자긍심을 멋지게 표현한 저 한마디는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답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패튼 장군의 제4 기갑사단과 제3 보병사단이 포위망을 뚫기 전까지 101공수 사단은 기적적으로 바스통을 지켜냈고 이 공로로 미군 전체에서 최강의 사단이라는 칭호와 함께 Distinguished Unit Citation 기장을 부여받습니다.

8. 책벌레 - 나폴레옹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 사람이 된다”, “1%의 가능성 그것이 나의 길이다”, “역사를 지배한 것은 항상 승리의 법칙이었다”, “약속을 지키는 제일 나은 방법은 약속하지 않는 것이다” 등등 나폴레옹의 명언들은 한 권의 책으로 낼 만큼 많습니다. 명언 제조기였죠. 또 비소 중독설 및 암살설, 키에 대한 콤플렉스, 성불구자설 등등 나폴레옹만큼 많은 설을 달고 다닌 역사적 인물도 참 드물지 싶습니다.

나폴레옹은 현재 프랑스의 기본 정신인 프랑스 혁명 정신(자유, 평등, 박애)을 유럽 대륙에 전파했으며,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고 그 유명한 로제타석을 이집트 원정에서 발견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뤘으며 그의 지시로 건설된 개선문은 현재까지도 파리를 상징하는 주요 건축물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저 말처럼 그가 정말 희망적인 사람이었는지는 사실 의심스럽습니다만 (러시아 원정에서 전멸 직전의 프랑스군을 팽개쳐두고 혼자만 프랑스로 돌아와 버린 점) 그래도 그가 남긴 저 말 만큼은 전시든 평상시든,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희망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9. 고집불통 늙은이 (Old blood and guts) - 패튼 장군 

"나를 지휘해라, 아니면 나를 따라라. 둘 다 아니면 내 앞에서 꺼져라"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패튼은 저돌적인 작전과 욕설로 유명한 장군이죠.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독일, 프랑스 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패튼 장군은 하루에 110km를 진군하는 화끈함으로 독일군에게조차 유명 인사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불굴의 의지작전(Operation Fortitude)의 지휘관이기도 했던 패튼 장군은 1945년 12월 9일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평소 욱하는 성격으로 심지어 부상병들까지 구타했던 패튼 장군은 그런데도 솔선수범의 상징이었습니다. "지휘관이 직접 총알 날아가는 소리를 들어야 전황을 파악할 수 있다"며 최 전선 시찰을 밥 먹듯이 했고, 군단의 전체 병사를 완전 무장시켜 15분 안에 1마일 구보를 시키면서도 제일 앞에서 달리곤 했던 지휘관이었죠.

그가 날린 여러 가지 엽기, 패륜성 언급 중에서도 저 말을 그의 최고의 어록으로 선정한 이유는 저 말만큼 그의 저돌적 성격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 방식을 가장 잘 묘사한 말을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10. 바다 사나이, 맥아더 장군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죽든 살든 결국 다른 점은 눈꺼풀의 위치일 뿐이다"
(In war, you win or lose, live or die - and the difference is just an eyelash)

더글러스 맥아더 역시 많은 화젯거리를 양산한 장군이었습니다. 미 육군 원수까지 지냈고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을 상대로 한 태평양 전쟁을 진두지휘했으며, 한국 전쟁에서는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걸출한 영웅 맥아더 장군이죠.

한국 전쟁 중 중공군의 참전을 막기 위해 만주 핵폭탄 투하를 주장했고, 1951년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사령관직에서 결국 해임된 그는 군 복무 중 참 다양한 명언을 쏟아낸 명언제조기였습니다. 하지만 위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맥아더는 고압적이고 이기적이며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그의 성격이 있었기에 많은 명언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그의 지휘 방식은 카리스마 넘쳤으며 인천 상륙 작전 때처럼 한번 내린 결정은 아무리 주위에서 반대해도 굽히지 않는 거로 유명했죠. 그는 각각의 전투 자체를 체스 게임처럼 생각했고, 병사들의 목숨은 게임을 위한 말들 정도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부하들에게 자상했던 지휘관이었다는 모순된 평가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전략적 가치가 전혀 없던 필리핀을 점령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미군을 희생시킨 그의 결정은 그가 일본군에 쫓겨 필리핀을 떠나면서 뱉었던 말 "I'll be back soon(곧 돌아올 것이다.)" 오로지 이 한마디를 지키기 위한 목적 외에는 없었다고 혹평을 받기도 합니다.

 

10개의 명언 중 어떤 명언이 뇌리에 스치고 가슴을 울렸나요?

누구나 인생 명언 하나쯤은 있습니다.
최고의 전쟁 명언 10을 읽은 이 시간, 당신만의 인생 명언을 하나 선정해보시기 바랍니다.


글: 가우디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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