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잊혀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1편)

잊혀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 (1편)

한반도가 일제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시절,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한 전설적인 한국인 전쟁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타고난 전투 지휘관 고(故) 김영옥 대령입니다.

 
사진1. 고(故) 김영옥 대령

그가 각국에서 받은 훈장은 그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평생 단 한 번만 받아도 영광인 무공 훈장을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수여 받고 미국에서는 각종 공로훈장까지 수여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 태극무공훈장(최고훈장)
이탈리아 : 십자무공훈장(최고훈장), 동성무공훈장
프  랑  스 : 레지옹도뇌르(최고훈장), 십자무공훈장
미        국 : 특별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2개, 리전 오브 메릿 2개, 동성무공훈장 2개

김영옥 대령이 수여 받은 훈장만 보더라도 그가 진정한 군인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솔선수범을 보이던 장교이자 탁월한 지휘로 부하들의 희생을 최소화한 현명한 지휘관이었죠.

김영옥 대령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군 지휘관으로 유럽 전선을 누비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 후, 제대했으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재입대라는 선택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전장에 투입된 그는 교착상태였던 전선을 60km나 북으로 밀어 올리는 성과도 이뤄냅니다.

사진 2. 1944년 미국 전쟁성 장관, 이탈리아 주둔 미군 사령관과 함께 의장대 사열 중인
김영옥 대위

이런 용맹함과 뛰어난 지휘 능력을 보여준 그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최고의 군인" – 존 코벡 미 육군 예비역 중령
"내 휘하에 있던 50만 군인 중 최고의 군인" – 마크 클라크 전 유엔군 총사령관

김영옥 대령이 어떤 활약을 펼쳤기에 이처럼 많은 이들의 찬사와 최고 훈장을 수여 받았는지 지금부터 소개하려 합니다. 그의 중요한 전투 기록을 살펴보기에 앞서 김영옥 대령의 유년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옥은 아버지 김순권과 어머니 노라고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김영옥에게 외교권도 없이 일본에 강제합병 당한 조국 대한민국은 미국인에게 설명하기 힘들었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대한인 동지회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항일운동가였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김영옥에게 아버지의 독립운동은 조국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진 3. 1945년 2월 유럽 전선에서 돌아온 김영옥과
그를 마중 나온 어머니를 찍은 LA타임스 기사 사진.

김영옥의 군 생활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인 1941년 1월, 미 육군 사병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사회에서 아시아인으로서의 차별대우는 군에서도 어김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김영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육군 장교 후보생 학교에 입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졸업 후, 김영옥은 100대대로 배치되는데 이 역시 안타깝게도 인종차별의 결과였습니다. 미 육군은 1개 연대가 3개 대대로 구성되고 대대 명칭은 보통 1대대, 2대대, 3대대로 불렸습니다. 그런 군 편제 하에서 사단도 없고 연대 소속도 없는 100대대는 특별한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부대였습니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미군은 일본계 군인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하여 한 부대에 편성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겨 난 부대 이름이 100대대였습니다.

이때 김영옥은 실수로 일본계로 분류하게 되어 이 부대의 소위로 임관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민 통치를 받는 한국계 군인이 식민 지배를 하는 일본계 군인을 통제하는 장교를 맡게 된 것입니다. 이는 김영옥 소위로의 생활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후 김영옥의 100대대는 미군 34사단 133연대에 배치되어 이탈리아 전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독재자 무솔리니를 해임한 이탈리아왕 빅토르 엠마누엘 3세가 연합군에 항복한 상태였고 해체된 이탈리아군 대신 독일군이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4. 이탈리아 중부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독일군 방어선 구스타프 라인

1943년 9월, 이탈리아에 상륙한 김영옥의 100대대는 독일이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있는 카지노(Cassino)를 중심으로 구축해 놓은 방어선인 구스타프 라인 공략에 투입됩니다. 산악지형인 구스타프 라인 공략에서 김영옥 소위의 탁월한 지휘능력과 리더십을 직접 확인한 부대원들은 차츰 그를 리더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덧 100대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장교로 거듭났습니다.

그의 진정한 전쟁 영웅으로서의 활약은 여기서부터 펼쳐지게 됩니다.

구스타프 방어선 돌파가 예상보다 지연되자 연합군은 과감한 작전을 펼칩니다. 100대대를 포함한 2개 사단을 구스타프 라인을 우회해 이탈리아 북쪽 항구인 안지오에 상륙시킨 것이죠. 이 작전은 남북으로 독일 방어선을 협공하고 단숨에 로마를 해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연합군이 카지노 방어선에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독일군의 허를 찌르고 안지오를 포함한 주변 평야 지대를 점령하는 결과를 기대한 것입니다.

사진 5. 안지오의 미군을 위협하던 독일군 전차부대

하지만 미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장의 계획은 수포가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독일군이 이탈리아 북부의 전차사단을 포함한 정예부대를 이동시켜 안지오에 상륙한 연합군을 포위한 것입니다. 연합군은 안지오 포위선을 뚫지 못하면 로마 해방은 고사하고 독일군 전차 사단에게 전멸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이죠.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합군이 독일군 전차사단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섣불리 공격했다간 전차 사단의 화력에 막대한 피해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은 어떻게든 독일군 포로를 잡아 이 정보를 구하려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미군은 5군 사령부에서 6군단 본부를 거쳐 34사단까지 포로를 생포하라는 지시가 지속해서 내려왔습니다. 이에 소대, 중대는 물론 전차까지 동원한 포로 생포 작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며 공격 작전 수립은 계속 지연되었습니다.

사진 6. 1944년 이탈리아 북부를 행군 중인 100대대,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당시 정보 참모 김영옥 대위

이때 김영옥은 대대 정보 참모로 진퇴양난의 부대를 보며 뜻밖의 작전을 제안합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직접 적진으로 침투해 적군을 생포해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연대본부, 사단본부, 군단 본부, 5군 사령부까지 전달되었으나 마치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 싶은 이 작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결과는 “자살행위와도 같지만 지원한다면 가도 좋다”는 다소 애매한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으나 ‘그렇게 죽고 싶다면 한번 해봐라’라는 의미의 승인이었습니다. 이런 반응이 당연한 것이 당시 주변 상황을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의 대치 상황은 한국의 휴전선처럼 일촉즉발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원에 자리한 연합군과 산악에 자리한 독일군 사이에는 철조망이 처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지뢰가 빽빽하게 설치돼 있었습니다. 지뢰 지대 바로 뒤에는 철조망과 긴 참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엔 개인 참호와 소대 병력이 들어가는 벙커가 자리 잡았습니다. 참호마다 무장한 독일군이 들어앉아 철조망 주위 무인지대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 집중 사격을 가하던 중이었습니다. 안지오를 탈환하지 못하면 로마를 내줘야 하는 독일군의 입장에서 한 뼘의 땅도 연합군에 내줄 처지가 아니었기에 전의 또한 대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옥은 삼엄한 경계를 뚫고 적진으로 침투해서 독일 전선 후방의 독일군을 생포해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 7. 안지오를 포위하고 있던 독일군 방어 부대

김영옥은 자원병 한 명과 함께 털모자에 권총과 기관총 각 1정, 수류탄 2발만을 지니고 지뢰지대까지 기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일일이 손으로 지뢰를 제거하며 근 한 시간이 걸려 무인지대를 통과 후, 첫 번째 참호 바로 앞에 엎드려서 밤을 새우게 됩니다. 날이 밝아오자 두 사람은 참호에서 철수하는 독일군 부대를 포복으로 따라가 벙커주위 도랑에 숨어 완전히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뜨고 독일군 매복조가 철수하자 모든 경계는 두 사람이 이미 지나온 무인지대 쪽으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김영옥은 독일군 진지 내에서 과감하게 두 명의 독일군을 생포합니다. 발각되는 즉시 총알로 벌집이 될 게 뻔한 이 무모한 작전은 두 사람이 포로 둘을 데리고 3중 참호지대를 지나 지뢰밭을 거쳐 아군 참호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작전은 끝이 났습니다.

이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연합군 진영에 삽시간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대, 연대, 사단, 군단, 군사령부에 차례로 작전 내용을 보고했고 애초 자살행위라고 여겼던 군 수뇌부는 보고를 듣자 말자 그에게 특별 무공 훈장을 수여합니다. 무공 훈장 수여는 서류심사에만 몇 달이 걸리지만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킨 김영옥에게는 보고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이미 수훈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진 8. 독일군 전차부대의 위치를 파악한 공로로
마크 클라크 5군 사령관에게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김영옥

연합군은 김영옥이 생포한 포로를 심문해 독일 전차사단 위치를 얻게 되어 5월 23일 버팔로 작전이라 명명된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그 결과 독일군 포위망을 뚫고 로마 해방은 물론 독일군의 구스타프 방어선도 무너지게 됩니다. 김영옥의 작전 성공으로 이탈리아 전선의 판도가 삽시간에 달라진 것입니다. 이런 공을 이탈리아 정부도 인정해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인 십자무공훈장을 김영옥에게 수여하게 됩니다. 김영옥은 이 상을 받은 유일한 한국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안지오 전투 이후에도 김영옥의 활약은 계속되었습니다. 독일군이 이탈리아 피사를 방어하기 위해 강을 따라 방어선을 치고 완강한 저항을 하고 있을 때 김영옥의 가짜 도강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100대대는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도강에 성공하여 피사 해방의 선봉대가 되었습니다.

사진 9. 김영옥의 100대대가 1944년 5월 연합군의 로마 행방 작전에 투입.

김영옥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을 향해 포병과 전차로 집중 화력을 퍼부은 후, 단신으로 적진에 접근하여 설득으로 항복을 받아낸 일도 있었습니다. 이후 프랑스 전선에서도 맹활약한 김영옥의 탁월한 전술 덕에 100대대는 최정예 부대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유색인종으로 유럽 전선에서 훈장을 휩쓸었던 김영옥은 그 공을 인정받아 대위까지 진급했습니다.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종결되며 유럽 전선에서 돌아온 김영옥은 제대하게 됩니다. 이후 김영옥 군인이 아닌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업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김영옥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미군에 입대해 전장을 향하게 됩니다.

사진 10. 1965년 중령 시절 김영옥

아무리 용맹한 지휘관이라도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명령권자인 장교 신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적진에 침투해 포로를 생포하는 용맹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무의미한 희생을 줄이고자 적군을 설득해 항복을 유도한 전선의 휴머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기만전술로 적의 허점을 노려 희생 없이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는 현명함도 갖춘 군인이었습니다.

김영옥은 조국을 위해 다시 한번 험한 전장을 선택하고, 유럽 전선에서 경험했던 전술과 작전을 통해 한국 전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이런 군인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5년 9월 MBC 스페셜 ‘영웅, 김영옥 대령’이 방송되며 많은 한국인에게 그의 이름이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에게 그는 생소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언론에서 그의 인생을 다루기 전까지만 해도 김영옥 대령은 대한민국에서는 잊혀진 전쟁 영웅이었기 때문입니다.

잊혀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 이글을 통해 그의 군인 정신과 조국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가우디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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