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6월 25일 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제6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내전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6·25전쟁)은 국제연합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소련과 미국을 대표하는 주력 전차들도 한국에 상륙하여 치열한 전투 양상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번 주 역사 이야기는 한국전쟁에서만 운용된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진 미국의 중형전차 M46 Patton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M46 Patton의 개발
1945년 2월 유럽 전선에 주둔해 있던 미군은 26대의 M26 Pershing을 지원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의 반응은 "드디어 우리도 독일의 Tiger와 Panther를 상대로 싸워볼 수 있구나!"였습니다. Pershing은 전장에서 성공적으로 운용되었지만 그리 준수하지 못한 기동성은 고질적인 문제로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엔지니어들은 기계 유압식 변속기와 새로운 엔진을 설치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업그레이드된 버전은 테스트를 거쳐 M46 Patton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최신 전차의 생산뿐 아니라 이미 생산된 M26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대규모 철수를 시작하여 전차 개발 프로그램을 거의 종식 시키다시피 하였습니다. 그 결과, 1950부터 1953년까지 전개된 한국 전쟁에 참전했을 때 미국은 전차 개발 기술에 대한 심각한 필요성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M46 Patton, 드디어 한국전에 투입되다
한국 전쟁 발발 후, 현실적으로 국군이 가장 빨리 전차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 주둔해있던 미군 부대였습니다. 당시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국 기갑부대는 일본 산악지형에 적합한 경전차 M24 Chaffee를 주로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꽤 비슷한 지형의 한국에서 M24 Chaffee가 성공적으로 운용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북한군이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T-34-85였습니다. 소련의 막강 중형전차 T-34-85를 상대로 경전차 M24 Chaffee는 속수무책 당할 뿐이었습니다.
개전 초기 북한군은 무서운 기세로 남쪽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미군 장군 더글라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는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전차를 지원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매우 혼란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Pershing 전차 또한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나머지 남한 영토를 사수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투입됩니다.
북한군에 대항한 육군과 공군의 필사적인 저항은 미국의 M46 Patton을 탑재한 수송선이 남한에 도착할 때까지 북한군의 진격속도를 늦추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M46 Patton은 제 6기갑대대와 함께 국군 및 UN 연합군의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으로 보내졌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진흙 구덩이에 빠진 제 6 기갑대대의 M46 Patton>
M46 Patton은 이제 전장 선두에서 활약할 준비가 되었지만 얼마 동안은 북한의 T-34와 맞닥뜨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한 1950년 가을,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 시기에 벌어진 전투에서 제 6기갑대대의 M46은 북한의 T-34-85와 SU-76을 격파했습니다.
하지만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이었습니다. 국군 및 UN 연합군은 이들의 빠른 기동속도에 퇴각을 결정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제 6 기갑대대는 거의 모든 전차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노획된 M46 Patton은 이를 수송 중이던 적의 열차 위에서 미군기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몇 대의 Patton은 결국 중공군의 손에 들어가 승리 트로피가 되었고 소련에서 이를 입수하여 자세히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운용 중인 M46 Patton>
연료 먹는 하마 Patton
Patton 전차 대부분은 국군 전선이 안정화 될 때까지 한국전쟁에서 꾸준히 운용되었으며 주로 적의 보병을 상대하고 요새를 파괴하는 자주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미국 전차의 주된 적은 북한의 T-34-85가 아닌 지뢰와 잦은 고장이었습니다. 다음은 약 3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던 한 기갑대대의 1951년 5월 한 달 동안의 전차 수리 기록입니다.
- 3개의 변속기
- 40개의 오일 쿨링 팬
- 27개의 연결기
- 9개의 측면 변속 장치
- 6개의 차동 기어
이뿐만 아니라 사소한 정비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여 전장에서 그때그때 해결해야 했습니다.
Patton의 또 다른 단점은 "연료 먹는 하마"라는 별명에서 잘 나타납니다. Patton은 평균적으로 1 마일 당(약 1.8km) 4.5 갤런 (약 15 리터)의 꽤 많은 연료를 필요로 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지뢰에 캐터필러가 파괴된 M46 Patton과 이를 견인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
한국 전쟁은 중형전차 M46 Patton이 활약할 기회를 가졌던 최초이자 마지막 전장이었습니다. M46 Patton의 전투력은 소련의 T-34-85를 능가했지만,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M46은 여전히 소련 전차 성능에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1949년부터 전장에 본격적으로 배치된 소련의 T-54 이후 미국과 소련 전차의 성능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소련 전차의 100mm 주포는 1km 거리 밖에서도 Patton의 가장 두꺼운 장갑을 쉽게 관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운용 중인 M46 Patton>
그 결과 M46 전장 경력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951년 6월에 후계자 M47 Patton II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