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수학여행, 가족여행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필자 역시 가족과 함께 찾은 제주도는 평화로웠습니다. 연간 방문객이 300만 명에 가까운 성산 일출봉도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숨겨진 민족의 아픔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장관으로 들뜬 마음도 숙연해졌습니다. 바로 성산 일출봉에는 일본 식민지 때 새겨진 비극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과 영국령 말레이 반도 및 홍콩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함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동남아 진출에 대한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압박을 느끼고 전쟁을 감행했지만, 사실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잠재적으로 ‘적’으로 내정하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방면으로 동시 공격을 펼친 것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석권했으며 인도, 호주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4월 18일, 미국의 둘리틀 폭격대의 도쿄 공습으로 일본은 초계선을 하와이 근처까지 확대하기 위한 미드웨이 작전을 감행합니다. 일본은 보안 누설로 열세였던 미국의 함대에 대패를 기록하고 그나마 필리핀 해전에서 복구한 전력도 완전히 궤멸하며 점령지 대부분을 상실하게 됩니다. 코앞까지 내몰리며 패전을 감지한 일본은 본토로 진격하는 연합군을 최대한 저지시켜 유리한 조건에서 강화협상을 원했습니다.
이러한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1945년 2월 일본 내 6개 지역과 일본 외 1개 지역에서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결 작전’에 돌입합니다. 그중 ‘결7호 작전’을 준비했던 곳이 제주도였습니다. 일본 본토가 아닌 지역으로는 유일했습니다.
1945년 4월 15일, 전투서열이 정해진 제주도에는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 3개사단 등 7만5천 명의 병력이 배치되었습니다. 해안부터 한라산까지 주요거점에 각종 군사시설이 자리 잡았고, 해상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 동쪽 성산 일출봉을 비롯하여 삼매봉, 수월봉 등 해안가의 절벽에 특공기지가 구축되었습니다.
위와 같은 군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성산 일출봉에 온 필자는 하단 부분을 탐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관람 경로가 아니어서 주변 식당 주차장에 주차하고 조심스럽게 걸어가 보았습니다. 그 길 끝에는 일본군이 건설해 놓은 진지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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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는 해안가보다 약간 위에 있었고 길이 없어 오르는데 어려웠습니다. 깊고 어두운 동굴 속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군사적으로 해안포 등을 배치하기 충분했습니다. 직접 이 광경을 보니 진지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탐방을 마치고 반대편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은 '관광지라 쓰이고 있지만, 민족의 아픔이라 읽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동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한국사 공부를 시작한 필자의 아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성산 일출봉은 CNN에서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 볼 만한 명소 1위’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최고의 관광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의 치욕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는 것이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성산 일출봉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곳도 없었으며, 해당 지역으로 가는 경로와 가파른 동굴 입구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조차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제주도 방문을 통해 과연 우리는 미래만 생각하고 역사를 잊고 사는 게 아닌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방문기를 읽은 전차장님들도 성산 일출봉의 이면에 관심을 두고 질문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