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이름의 유래 – 알렉산드르 오스킨

숙련된 전차장이라면 1~2 단계 낮은 전차를 운용하는 것쯤은 적 전차를 상대하는 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기꺼이 즐기며 빛나는 활약을 펼친 끝에 이미 오스킨 훈장을 획득했을 수도 있지요. 오스킨 훈장은 중형전차로 자신이 운용하는 전차보다 1단계 이상 높은 적 전차를 3대 이상 격파해야 하는 쉽지 않은 획득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장 이름의 실제 주인공 알렉산드르 오스킨은 누구이며 실제 전투에서 과연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요? 훈장 이름의 유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알렉산드르 오스킨은 1920 년 4월 8일 러시아의 코로비노(Korovino)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 때는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고 모스크바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국세청의 세무원이 되어 세금 업무를 하는 평범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1940년 말에 군에 입대한 오스킨은 전차병이 되어 중앙아시아 군관구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렇게 군 복무가 끝나면 다시 세무원을 하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하던 그의 인생은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소련 침공 계획인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전차를 앞세우고 들이닥치는 독일군 앞에 심각한 전차병 부족을 겪던 소련군은 기간 전차병들을 급거 전차장으로 진급시켜 투입합니다. 오스킨도 이런 과정을 거쳐 2차 세계 대전 전장에 처음으로 투입되는데 1941년 7월부터 II T-26  경전차의 전차장 되어 서부 전선에 위치한 브리얀스크(Bryansk) 전선에 주둔하였습니다. 오스킨은 스몰렌스크(Smolensk) 전투에 참여하여 독일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전격전을 본격적으로 실행한 바르바로사 작전의 시작이 된 전투였습니다. 또한 오스킨은 제18 전차연대 소속으로 1941년 모스크바 방어전에 참가, 전차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10월에 생명을 위협하는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오스킨은 몇 달 동안의 병원 생활 중 치료가 채 완전히 끝나기 전에 전투에 복귀하는 것을 고집합니다. 결국 1942년 7월에 다시 전선에 복귀하여 V T-34  전차의 무전병 겸 기총수로 근무하며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에 참가합니다. 동부전선의 전세가 걸린 이 대전투 속을 정신없이 달리며 싸우던 그의 전차에 독일 항공기가 쏜 기관포탄이 내리 꽂혀 작렬한 순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후송됩니다. 이 부상에서도 회복한 오스킨은 정식으로 전차장이 되는 추가 교육을 받으러 폴타바(Poltava) 기갑 학교에 입교, 1943년에 수료하고 1944년에 다시 전장으로 투입됩니다.

1944년 1월에 드디어 전차장으로써 VI T-34-85 를 지휘하게 된 그는 제5 독립 전차 훈련 연대를 거쳐 동년 6월에 제53 근위 전차 여단에 부임, 다시 한번 전투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1944년 8월, 오스킨이 속한 제53 근위 전차 여단은 폴란드로 진군해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점점 독일을 향해 가까이 전진하는 와중이었고 그런 만큼 독일군의 저항도 점점 거세어졌습니다.

8월 11일, 여단 지휘부는 오스킨에게 약간의 보병을 수반하고 오글렌두프(Oglenduw) 마을을 정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지역에 독일군의 활동이 증대했다는 첩보를 직접 확인하려는 것으로 오스킨은 긴급 상황에서 엄호를 받기 힘든 전차 한 대로 이런 명령을 수행하는 게 꺼림칙했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었습니다. 그는 보병들을 모아 자신의 T-34-85 전차에 태운 후 지시받은 마을로 기동했습니다.

마을에 도착해 주변을 살핀 오스킨은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기점으로 보병들에게 주변에 매복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의 T-34-85 전차 역시 짚단 뒤에 잘 위장시켜 놓습니다. 곧 그는 이 마을을 향해 독일군의 전차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을을 향해 커다란 몸집을 비틀며 움직이던 독일의 전차들은 해가 지고 점점 어두워지자 일단 그날의 자력 행군을 멈추고 야영을 준비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그 거대한 몸체가 가려지지 않는 이 전차들은 독일군 제501 중전차 대대 소속의 VIII Tiger II  중전차들이었습니다. 오스킨은 일단 독일 전차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인 12일 오전 7시경, 전차장 승강구(*주로 전차장용의 출입 해치가 달린 작은 관망탑)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오스킨의 눈에 독일군 전차들이 마을을 떠나 이동하려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Tiger Ⅱ를 처음 보는 소련군 보병들이나 그의 부하 전차병들 눈에는 이 거대한 실루엣이  VII Panther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스킨은 이 독특하게 각진 포탑과 경사 장갑을 가진 괴물이 Panther가 아니라 독일의 신형 중전차임을 즉시 깨닫습니다. 오스킨의 눈앞을 지나가는 독일군의 Tiger Ⅱ 중전차 선두는 3대였습니다.

오스킨은 측면을 드러낸 이 Tiger Ⅱ들을 직접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철갑탄 장전!”

오스킨의 명령과 함께 이어지는 폭음. 발사된 85mm 포탄은 대열 두 번째 Tiger Ⅱ의 포탑 측면을 강타했습니다. 포탑을 직격당한 두 번째 Tiger Ⅱ는 그 자리에 멈춰 서긴 했지만, 폭발음이나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철갑탄 장전!"

오스킨은 연이어 두 발의 철갑탄을 두 번째 Tiger Ⅱ의 포탑에 쏘게 했으나 Tiger Ⅱ는 별 반응이 없었고 그는 네 번째 포탄은 차체 후면의 연료탱크가 있으리라 생각되는 곳에 쏘게 했습니다. 사실 이 Tiger Ⅱ는 초탄이 운 좋게 관통되어 이미 포탑 내의 독일 전차병들이 전사한 상태였지만, 외관으로는 확인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두 번째 Tiger Ⅱ의 차체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자 다른 Tiger Ⅱ들도 포탑을 돌리며 자신들을 공격하는 ‘저격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포연으로 인한 자욱한 먼지 속에서 짚단 뒤에 잘 숨은 오스킨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오스킨의 저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번엔 첫 번째 Tiger Ⅱ로 표적을 바꿔 포탑에 철갑탄 3연사를 퍼붓습니다. 오스킨은 포수인 메자이도로프(Mejaidorov)에게 결과를 물었습니다.

“어떻게 됐나?”

“전부 튕겨 냈습니다!”

역시 히틀러가 독일을 구원할 결전 병기로 신봉한 Tiger Ⅱ는 그 이름에 상응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차전에선 코앞이나 다름없는 200m 거리에서 발사된 85mm대의 철갑탄 직격을 모두 도탄 시킨 것입니다.

“포탑 링을 노려라, 포탑과 차체 결합부를 쏴!”

오스킨의 명령에 재 조준을 한 메자이도르프가 주포 발사 페달을 밟자 힘차게 날아가는 4번째 철갑탄. 그의 명령대로 차체 측면 포탑 링에 작렬한 포탄은 Tiger Ⅱ 내부의 포탄(Tiger Ⅱ는 차체 양 측면 쪽에도 포탄을 적재)에 유폭을 일으켰는지 커다란 불길이 포탑 밖으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이렇게 2대의 Tiger Ⅱ가 차례로 오스킨의 제물이 되는 사이 세 번째 Tiger Ⅱ는 아직도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발견을 못 한데다가 앞에는 아군 Tiger Ⅱ가 주저앉아 있어 앞으로 나갈 방도가 없었습니다(대로 옆은 듬성듬성 농가가 들어서 있어서 기동에 불리). 이 세 번째 Tiger Ⅱ의 전차장은 아군 전차가 불타는 연기로 시계까지 불량인 상황 아래 이 곳을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 판단, Tiger Ⅱ를 급거 최속 후진으로 빼내기 시작합니다.

“전속 전진! 뒤로 우회한다”

오스킨의 명령에 T-34-85는 매복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Tiger Ⅱ는 나름 최고 속도로 후진하고 있었지만, 몸이 무거운 중전차인지라 빠르다곤 할 수 없었고, 오스킨의 T-34-85는 Tiger Ⅱ의 포신 사선을 피하며 대로 옆을 따라 달려나갔습니다. 중형전차인 T-34-85는 느리게 후진하며 포탑을 돌리는 Tiger Ⅱ보다 한발 빠르게 Tiger Ⅱ의 배후로 돌아섰고, 달리며 돌린 포탑이 Tiger Ⅱ의 후면 장갑판을 조준했습니다.

“발사!”

오스킨의 명령과 함께 근거리에서 발사된 85mm 철갑탄이 Tiger Ⅱ의 상대적으로 얇은 후면 장갑판을 관통해 불을 지르자 이 세 번째 Tiger Ⅱ의 저항도 끝났습니다. 이렇게 짧은 전투 끝에 오스킨은 Tiger Ⅱ 3대를 격파하고 전차에서 탈출한 독일 전차병 일부를 포로로 사로잡습니다. 중전차도 아닌 중형전차로, 그것도 최신 Tiger Ⅱ를 3대나 잡은 전과는 흔치 않은 데다, 제대로 운용된 독일군의 Tiger Ⅱ 중전차들은 1944-45년의 헝가리, 독일 등지에서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바 있어서 그의 전과는 더욱 각별하였습니다.

그가 사로잡은 첫 번째 Tiger Ⅱ는 곧 소련으로 보내져서 면밀히 조사되어 당시 수준 높은 독일의 공학 기술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Tiger Ⅱ 중 한 대는 오늘날 모스크바 근처의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스킨의 놀라운 전공은 대서특필되며 소련 각지에 홍보되었고 그 결과로 소련 연방 영웅 금성 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평범한 세무원으로 살 뻔했던 오스킨의 인생은 이렇게 전쟁으로 인해 급변하여 전후에도 기갑병과 지휘관으로 남아 1971년까지 근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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