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특집] 전쟁기념관 방문기

전차장 여러분 안녕하세요!

워게이밍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해 뜻깊은 장소를 방문하여 전자장 여러분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6월 6일 현충일과 6.25 전쟁이 발발한 6월은 호국 보훈의 달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의의가 있는 뜻깊은 달입니다.

한자 '顯忠日'로 표기되는 현충일은 '충성을 드러내는 날' 이라는 뜻으로서 현충일 노래에 그 의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현충일 노래 

겨레와 나라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 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워게이밍이 방문한 곳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입니다.

1994년에 개관한 전쟁기념관은 한국에서 유일한 군사 관련 종합박물관이자 아시아 최대의 군사박물관입니다. 실제 운용되었던 전차, 전함, B-52 폭격기를 포함한 다양하고 희귀한 군사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입장료도 무료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방문 필수 코스이기도 합니다. 


 

전쟁 기념관 앞에 전시된 다양한 조형물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특히 6.25전쟁 조형물인 호국군상과 형제의 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형제의 상은 6.25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맞서 싸우던 형제가 원주 치악고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조형화하여 민족의 화합과 단결,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였으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념관 야외와 실내에는 6.25 당시 사용했던 B-52, T-34 등의 대형장비와 세계 각국의 항공기, 장갑차 등 16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T34-85, M4A3E8 셔먼, M47 패튼, M46 패튼, M36, Type 59, Type 63, SU-100등 전시된 다양한 전차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장소입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6.25 전쟁 참전 실종 병사와 그 가족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신 이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전시관으로 향하는 복도이자 호국의 별이라 불리는 공간이 6.25 전사자 명부와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6.25 전쟁실로 들어가니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가득찬 화면이 처음으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많은 전사자의 유해가 발굴된다고 하니 어서 이분들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본격적인 전시는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이 남침을 논의하였던 당시 상황 설명과 소련, 중국, 북한이 주고받았던 보고서로 시작합니다.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 당시 철저한 공격태세를 갖춘 북한군과 비상 경계령이 해제된 남한군의 상반된 상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또 다른 유익한 자료가 있는데 거의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개전초기 남북한 군사력 비교입니다.

전시장 한 쪽에 마련된 화면에는 6.25 발발 전 곳 닥쳐올 전쟁의 비극을 예상치 못한 채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에 쓰였던 82mm 박격포, M-72 군용 오토바이, 북한군, 국군, 미군에서 쓰였던 다양한 총들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소련제 T-34 전차를 격파한 105mm 곡사포가 전시되어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북한군이 운용하였던 T-34 전차는 그것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없었던 국군에게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군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막아내고자 하였으나 105mm 야포로도 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김풍익 소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105mm 야포를 직접 사격하여 적 선두 전차를 파괴하였습니다. 김풍익 소령은 결국 대원들과 함께 전사하였고 이러한 대한민국 육군의 용감한 투지는 개전 초기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공군도 6.25 당시 공중에서 맨손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전 당시 한국 공군의 조종사는 단 57명뿐이었으며 보유 항공기도 12대의 연락기와 10대의 연습기뿐이었습니다. 연습기와 연락기에는 무장이 없었으므로 조종사가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사이 뒷자리에 탑승한 관측사가 직접 폭탄을 들고 창문을 통해 떨어뜨려야만 하였습니다. 이후 미군이 F-51 전폭기를 지원해 주기로 하자 10여 명의 조종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최단기간에 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전시실에는 참전 조종사의 전투일지, T-6 연습기 수료 조종사 명부, 폭격기 B-29의 폭탄,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던 순간의 재현 모형이 전시돼있습니다.

6.25전쟁 시 미군 고사포 부대에서 운용한 M16A1 반궤도 장갑차와 30구경 수냉식 기관총 M1917A1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전시관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과 모형으로 실감 나게 재현되었습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스스로 참전한 약 30만여 명에 달했던 학도명들에 관한 유물 또한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직접 제작한 태극기, 학도의용군 임명장, 공작훈련 수료증 등 귀중한 사료를 영상과 함께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 즉 선전 활동을 이용한 남북한 간의 고도의 심리전도 치열했습니다. 북한은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으며 국군 또한 벽보와 거리방송으로 국민들에게 행동지침을 전달하고 전투 승리 등을 선전하였습니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북한군이 퇴각할 때 500만 매 이상의 전단을 살포하였고 그 결과 많은 포로가 투항을 결심하였습니다.

전시관에는 당시 국군 측에서 살포하였던 전단들과 선전물 제작에 쓰였던 타자기, 카메라, 촬영기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병사들,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피난민들, 각국의 대표지도자들 등 전쟁이라는 비극에 휘말린 다양한 군상들의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 3년이 넘게 전개된 6.25전쟁은 수많은 피난민을 낳았고 유엔군의 참전, 서울 탈환, 1·4후퇴, 흥남 철수작전, 중공군의 인해전술, 인천상륙작전 등 극적인 과정을 거쳐 결국 국제전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전시관에는 당시의 상황이 담긴 사진과 유물이 자세한 안내문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 흥남철수작전은 세계전쟁 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해상철수로서 국군과 유엔군 105,000명의 병력과 17,000대의 차량을 비롯하여 각종 장비와 물자들이 포함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십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였습니다. 이 작전은 6.25 전쟁 중 가장 극적인 민족대이동으로 평가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였던 흥남철수작전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종전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전쟁으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남북한과 참전국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한반도의 분단 고착성을 강화한 6.25 전쟁의 교훈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직 발굴하지 못한 6.25 전쟁 전사자 약 12만 4000여 분의 유해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곳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리며 이번 6월에는 전쟁기념관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쟁기념관 ( War Memorial of Korea)>

위치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관람 시간 : 매일 09:30 - 18:00 (월요일 휴무)
입장료 : 무료
문의 전화: 02-709-3139 [사이트 바로가기] 

※ 본 컨텐츠의 모든 내용은 전쟁기념관의 협조하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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