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지도 이야기 - 카렐리아

전차장 여러분!

월드 오브 탱크 지도에서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과연 현실 속 전장에서는 어떠한 사건들이 발생했을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까? 이번 주 역사 이야기는 가장 인기 있는 지도 중 하나인 카렐리아두고 두 나라가 벌인 치열한 영토 쟁탈전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카렐리아 배경음악과 함께 생생한 역사의 현장 속으로 빠져들어 보십시오. 


 

카렐리아의 위치

월드 오브 탱크에서 카렐리아는 산악 지역과 긴 계곡으로 잘 알려진 하계지도입니다. 무작위 전투(조우전 제외)를 통해 만날 수 있으며 특히 구축전차와 저격수에게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점이 많아 이들에게 인기 있는 지도입니다.

<월드 오브 탱크 속 카렐리아>

실제로 카렐리아는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 인근에 펼쳐진 남한보다 큰 면적을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먼 옛날 핀란드는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지만 1809년에 러시아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핀란드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을 세워 핀란드를 침략하고 러시아 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이후 1차 세계 대전을 거쳐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독립 국가를 선포합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카렐리아의 현재 모습>

카렐리아를 둘러싼 분쟁의 시작

스웨덴을 포함한 인근 여러 국가는 핀란드의 독립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소련 정부와의 관계는 항상 껄끄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옛 러시아 제국 시기에도 그랬듯이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후 핀란드와 소련 간의 국경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수도 레닌 그라드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핀란드 국경과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기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1939년 11월, 소련은 핀란드와 맞닿은 국경을 서쪽으로 이동 시켜 카렐리아 지역이 소련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소련의 다른 영토를 핀란드로 양도한다는 협상안을 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핀란드 입장에서 너무나 큰 영토 손실을 야기하였기에 제안을 거부하였고 또 다른 협상안이 제시되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39년 11월 26일 국경 지대에서 소련 군대를 겨냥한 포격이 발생하고 이로부터 이틀 후 소련과 핀란드 간의 불가침 조약 효력이 중지됩니다. 오늘날까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이 소련 정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결국, 11월 30일 소련은 공식적인 선전 포고 없이 카렐리아 지역을 통해 21개 사단(약 450,000명의 군사)을 이끌고 핀란드를 침략합니다. 당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소련에 맞설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핀란드는 카렐리아 지협(Karelian Isthmus)을 가로지르는 방어 요새인 만네르하임선(Mannerheim Line)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만네르하임선(Mannerheim Line): 핀란드가  소련에 맞서기 위해 카렐리아 지협에 건설한 요새방어선. 핀란드 야전원수 만네르헤임 남작의 이름을 붙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당시 만네르하임선의 모습>

혹독한 겨울 전쟁

바야흐로 소련과 핀란드 간의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그해 겨울은 유독 추웠지만 혹독한 날씨에 익숙한 핀란드인들은 스키를 타고 위장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만네르하임선 근처에서 소련군의 진격이 예상보다 많이 늦춰졌고 이는 소련군과 스탈린에게 커다란 수치심을 안겼습니다. 스탈린은 만네르하임선이 프랑스 마지노선 만큼이나 견고하게 건설되었고 특유의 혹독한 기후와 지형 탓에 돌파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며 엄청난 선전 공세를 시작합니다.

※겨울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39년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 소련-핀란드 전쟁 이라고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마지노선(Maginot Line): 제1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가 1927년부터 독일의 전차부대를 막기 위해 지어진 750km의 요새선. 이 요새선 구축을 건의한 당시 프랑스 국방성 장관 '앙드레 마지노(Maginot)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 오늘날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로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한 단어.

하지만 핀란드의 치열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진격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소련의 병력은 이미 핀란드의 3배를 거뜬히 넘었고 소련이 자랑하는 수천 대의 전차와 전투기 또한 소련의 막강한 군사력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치열한 전투로 인한 소련군의 커다란 피해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방어선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핀란드는 한편으로 소련과의 협상을 시도하지만, 소련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2월 말, 스웨덴과 독일이 개입하여 전쟁 종식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소련은 평화 협정을 발표합니다. 핀란드가 소련의 평화 협정을 받아들이며 3월 13일에 전면적인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평화 협정의 결과 상당한 면적의 카렐리아가 소련의 영토가 되었고 그곳에 살고 있던 약 400,000명의 핀란드 주민 대부분이 핀란드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격파된 소련의 T-34를 살피는 핀란드 군인들. 당시 핀란드 군복은 독일군과 비슷한 스타일이었으며 핀란드 군인들은 독일의 지원을 통해 지급된 독일제 헬멧을 착용하였다>

끝나지 않은 전쟁

하지만 전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략했을 때 핀란드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계속 전쟁(Continuation War)으로 알려진 이 전쟁에서 핀란드는 독일의 동맹군이 되어 소련을 공격하였고 단 3개월 만에 핀란드는 이전에 소련에 빼앗겼던 동카렐리아 지역을 되찾고 이를 2년 반 동안 유지합니다.

※계속 전쟁(Continuation War): 혹은 제2차 소련-핀란드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가 독일의 동맹군이 되어 소련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 핀란드에서는 1940년에 종전한 겨울 전쟁(제1차 소련-핀란드 전쟁)에 이어 1년 만에 양국이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고 하여 계속 전쟁이라고 불린다. 출처: 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핀란드는 중립을 주장했지만 이제까지 지속해 왔던 소련과의 대립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면 독일이 소련을 상대로 승리를 차지하기를 바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승리하자 핀란드는 전쟁의 승패가 이미 결정 났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핀란드는 전쟁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만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1944년 6월, 소련은 핀란드를 상대로 무력행사를 시작합니다.

핀란드는 결국 패배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전쟁은 항상 패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남깁니다. 9월 19일 체결된 휴전 협정에서 핀란드는 소련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하고 1940년 합의되었던 두 나라 간의 국경 회복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카렐리아는 다시 소련의 영토가 되었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카렐리아 공화국(Republic of Karelia)이라고 명명된 자치 지역이 되었습니다. 

<독특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카렐리아 공화국>

소련, 핀란드 두 나라가 그토록 차지하길 원했던 카렐리아 전장을 오늘 마음껏 달려 보십시오!

그럼,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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