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소련 VIII IS-3 전차의 등장에 충격을 받아 VIII M26 Pershing 을 기반으로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M26 전차를 개발할 예정이었던 미국의 계획이 크게 틀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 M46 생산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6.25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M26과 M26A1을 M46 전차의 사양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실시되고 이들 전차는 한반도에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 투입될 다량의 전차가 급히 필요해진 미국은 전차의 '현대화' 작업을 더욱 빠른 속도로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M47 Patton의 탄생 배경 또한 6.25 전쟁과 인연이 깊습니다. 이미 1948년에 중량을 조금 더 가볍게 제한한 T42 전차 제작 아이디어가 제기되었지만 비용과 성능 등 여러 가지 무리한 상황으로 인해 이 아이디어는 곧 폐기되고 맙니다. 하지만 곧 T42 시제 중형전차의 포탑과 M46의 차체를 결합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조합은 M47 Patton 중형전차로 표준화되었으며 1951년에 발주가 시작되었습니다. M47 Patton은 6.25 전쟁으로 인해 서둘러 제작된 대표적인 전차 중 하나입니다. 생산량은 M46 Patton보다는 훨씬 많은 8,576대로 1954년까지 제작되었습니다.
M47 중형전차가 등장하였지만 M46의 개선 작업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차체 내부 성능 개선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그 결과 Continental AV-1790-5B 모터와 CD-850-4 변속기 유닛은 물론 브레이크, 화재 소화 시스템, 오일 냉각 시스템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개선된 장비를 장착하였습니다. 이러한 개량형은 1951년부터 생산되었으며 M46A1 중형전차로 명명되었습니다. M46A1은 M46의 내부 장비를 변경한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의 외관은 동일합니다. M46A1는 총 360대가 생산되어 M46과 M47을 잇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치명적인 약점
다시 IX M46 Patton 이야기로 돌아와서 살펴보자면, 6.25 전쟁 발발로 인해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급하게 제작되어 결국 6.25 전쟁에서만 운용되었던 이 전차의 운명은 Pershing/Patton 라인의 전차들 중에서도 특히 불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모든 개량형을 포함하여 총 1,160대만 제작되었습니다. Pershing/Patton 전차 라인 중에서 가작 적은 생산 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훨씬 적은 수로 생산된 중형전차 M45도 있었지만 이 전차는 M26 Pershing에 105mm 곡사포를 장착한 개량형이었습니다. 따라서 M46 Patton의 제작 대수는 미국이 당시에 '본격적으로' 생산한 전차 중에서 가장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륙 중인 M46 전차, 대한민국. 6.25 전쟁은 M46 Patton의 유일한 활동 무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