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역사: Tiger I

전차장 여러분, 

월드 오브 탱크에 등장하는 전차는 실제로 어떤 배경을 거쳐 제작되었을까요?
게임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전차의 실제 모습과 탄생 배경, 그리고 숨겨진 개발 비화까지.. 전차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독일 전차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VII Tiger I 입니다.

Tiger는 당시 엄청난 성능을 바탕으로 활약하여 연합국에게 "Tiger 공포증"을 일으켰습니다. 독일을 제외한 월드 오브 탱크에서 만날 수 있는 7단계 전차 대부분이 Tiger I을 상대하기 위해 제작되었거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Tiger의 흥미로운 역사 속 이야기를 아래에서 만나보십시오.


전차의 역사: Tiger I

독일 전차 Pz. Kpfw. VI Tiger가 제3 제국을 대표하는 전차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완벽한 전차는 아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차 공학의 정점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개발 배경

사실 독일 기갑 부대는 75mm 주포가 장착된 Pz. Kpfw. IV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의 전차 운용을 지켜본 후 Pz. Kpfw. IV로는 프랑스 마지노선(Maginot line)과 같은 요새를 공략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Matilda와 같은 영국 전차는 장갑이 매우 두꺼워 독일 전차로는 상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독일 사령부는 1937년 새로운 돌격 전차 설계를 명령했습니다. 전차 제작과 설계는 에르빈 아더스(Erwin Aders)가 이끌던 헨셸(Henschel)사에 맡겨졌습니다. 헨셸사는 이전에 시제 전차 DW1과 DW2를 제작했으나 파기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제 전차를 제작하며 쌓은 지식을 이후 Tiger 전차 제작에 유용하게 활용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독일 기갑 부대는 수많은 무적 전차로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전차 제작 기술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적이 예상치 못할 때 효과적인 기습을 감행해 유럽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과 전투에서 처음 T-34와 KV 전차를 마주하고 난 후 즉시 새로운 전차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가능한 한 빨리 제작해야 했습니다. 소련 전차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독일이 개발한 것은 Tiger뿐만이 아닙니다. 독일군은 75mm 장신포 KwK 40를 운용하여 장갑이 두꺼운 소련 전차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헨셸사와 포르셰사의 개발 경쟁

강력한 주포를 장착하고 장갑이 두꺼운 중전차를 새로 개발하려는 계획은 1941년 5월 히틀러가 직접 세웠습니다. 모든 전차 부대에 새로 개발한 전차를 최대 20대까지 투입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전차 설계는 아더스가 이끌던 헨셸사와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에게 맡겨졌습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는 자동차 개발 산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총애를 받아 전차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시제 전차는 1942년 5월에서 6월까지 제작해 히틀러에게 선보이도록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헨셸사는 첫 시제 전차 VK 36.01 (H)를 매우 빠른 시일 안에 제작했습니다. 이전 시제 전차를 제작하며 얻은 경험을 활용하여 차체와 변속기는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바로 주포였습니다. 크룹(Krupp)사에서 개발한 원뿔형 75mm 주포를 장착했는데 이 주포는 당시 매우 귀하고 비쌌던 텅스텐 탄심 1kg이 들어가는 철갑탄을 발사하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결국 비용 문제로 인해 군사위원회에서는 VK. 36.01 (H) 양산을 파기했습니다.

한편 경쟁자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는 이전에 개발한 VK 30. 01(P)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제 전차를 제작했습니다. 엔진실과 변속 장치 구조를 VK 30. 01(P)와 똑같이 설계하여 VK 45. 01(P)이라 명명했습니다. 주포로는 유명 독일 대공포 Flak 18/36을 기반으로 개발된 88mm KwK 36을 장착하기로 했습니다. 주포에는 소염기를 장착하고 전기식 방아쇠를 채택했습니다. 포르셰 박사는 히틀러의 총애만을 믿고 경쟁이 끝나기도 전에 포탑과 차체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경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여 부담 없이 현장 시험 날짜만 기다린 것입니다.

이전에 경쟁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 아더스 역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더스는 포르셰사의 시제 전차와 같은 주포를 장착하기로 했습니다. 차체 생산은 끝났으나 주포를 장착할 포탑 생산이 끝나지 않은 상태일 때 히틀러가 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시제 전차를 시험을 거치기도 전에 전선에 투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히틀러는 포르셰사의 시제 전차 60대, 헨셸사의 시제 전차 25대를 그해 가을까지 제작하라는 명령까지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지만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최소 몇 대만이라도 제작해야 했던 아더스는 결국 포르셰사에서 설계한 포탑을 장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제작한 전차는 히틀러의 생일에 선보여졌습니다. 포르셰 박사는 시제 전차를 시험장에 내려놓을 때 무거운 중전차가 지면에 박혀 창피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더스는 이를 예상하고 기중기를 사용해서 안전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시험 주행 결과 두 전차의 장단점이 각각 드러났습니다. VK 45. 01(H)는 엔진이 과열되어 화재가 일어났고 VK 45. 01(P)의 전기식 변속기는 안정성이 떨어졌습니다. 시험 후 두 시제 전차 모두 양산이 허가되었지만, 이후 군 지도부에서 히틀러를 설득하여 아더스의 전차만 양산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포르셰가 미리 생산했지만 쓸모없어진 차체는 이후 Ferdinand 전차에 사용되었습니다.

새로 개발된 전차는 Pz. Kpfw. VI Tiger로 명명되어 1942년 8월부터 양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Pz. Kpfw. VI Tiger의 개량형은 단 하나만 제작되었으나, 많은 문제점을 개선했습니다.

역사 속 모습

독일 기갑 부대는 Tiger 전차만으로 중전차 대대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Tiger 중전차 대대는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었으며 다른 부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Tiger 전차에 탑승할 승무원은 독일 파더보른 지역에 있는 제500 예비대대에서 훈련했으며 노련한 전차병과 신병까지 폭넓게 선발했습니다. 모두 이 놀라운 전차를 직접 탑승하고 싶어 지원한 병사였습니다.

처음으로 제작된 Tiger 전차는 1942년 8월 동부 전선에 배치되었습니다. 8월 29일 제503대대 소속 제1 중대가 레닌그라드 근처에 있는 Mga역에서 Tiger 전차를 배치받았습니다. 당시 히틀러가 새로운 전차를 전선으로 빨리 보내라고 재촉하여 전차를 정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차가 전선에 도착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 고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Tiger 전차 중 한대는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9월 중순 독일에 있는 공장으로부터 부품을 항공 수송해 올 때까지 공병은 Tiger 전차를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Tiger의 첫 실전 운용은 실패였습니다. 한 Tiger 전차는 고장 나서 버릴 수밖에 없었으며 3대가 늪에 빠져 병사들이 전차를 꺼내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버려진 Tiger 전차는 폭약으로 파괴했습니다. 1943년 1월에는 거의 손상되지 않은 Tiger 전차를 볼호프 전선에서 소련 군대가 노획하기도 했습니다. 붉은 군대는 노획한 Tiger 전차를 분석해 병사들에게 공략법을 숙지하도록 했습니다.

로스토프 근처, 하리코프, 레닌그라드에서도 Tiger가 운용되었으며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장갑이 매우 두꺼워 적 포탄을 대부분 견뎌냈습니다. 관통할 수 없는 장갑으로 유명해졌지만, 측면과 후면이 약점이었으며 차체 역시 약점 중 하나였습니다. 수류탄이나 포탄 몇 발로 궤도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널리 사용되던 화염병 역시 매우 위험했습니다. 환기 장치나 연료 주입구로 화염병이 들어오면 엔진에 불이 붙었습니다.

1942년 12월 1일 Tiger 전차가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제501 중전차 대대 소속 Tiger 전차 소대가 후퇴하던 에르빈 롬멜 중대를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Teburbe 전투에서 독일군은 압승을 거두었고 최소한의 피해만 입은 채 미국 전차와 영국 전차 134대를 섬멸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이후 Tiger 전차는 2대에서 5대씩 무리 지어 전투에 투입되었고 항상 연합군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아프리카 전선은 전차 설계에 큰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잦은 엔진 과열, 먼지, 열악한 도로 상태로 전차가 자주 고장 났습니다. 전차 설계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1943년 4월 독일군은 결국 아프리카 전선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Tiger 전차는 모두 탑승해 있던 승무원이 폭파하거나 연합군이 노획했습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Tiger 전차 139대가 투입되었습니다. 수가 적어 큰 업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당시 Tiger 전차의 명성은 “Tiger 공포증”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며 소련군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다른 독일 전차를 Tiger로 착각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Tiger 전차는 원거리 전투에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소련 전차나 대전차포는 Tiger 전차 앞에서 거의 무용지물이었습니다.

Tiger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운용 기간 내내 반 히틀러 연합군 전차에 매우 위험한 상대였습니다.

에르빈 아더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뛰어난 전차를 제작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갑과 주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으며 중량은 무거웠지만, 기동성은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현가장치 움직임도 부드러워 기동 시에도 효과적으로 사격할 수 있었으며 조종도 매우 간단해 독일 병사들 사이에서는 “무능하면 Tiger나 몰아라.”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Tiger는 제작 비용이 매우 비싸고 정비가 어려운 전차이기도 했습니다. 안쪽의 돌림판 하나를 교체하는 데 3일이나 걸렸으며 포탑을 제거해야 현가장치를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Tiger에 탑승한 승무원은 전차 성능에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에르빈 아더스는 “Tiger의 아버지”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Tiger는 현재에도 인기 있는 전차입니다. 수많은 관련 서적이나 모형 전차가 있으며 게임에서도 등장하곤 합니다. 아직도 몇 대가 남아 있으며 그중 실제로 작동하는 한 대는 영화 <퓨리>에도 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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