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자주포는 숨어있거나 방어 진지를 구축한 적에게 효과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다양한 종류의 자주포가 사용되었으며, 월드 오브 탱크에서도 특별한 병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번 화는 자주포 중 소련에서 개발했었던
IX
212A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Object 212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차의 역사: Object 212
다양한 자주포의 설계와 개발
1931년 9월 소련은 중자주포 설계를 시작하여 3가지 주포를 장착할 수 있는 SU-7과 SU-14을 개발하였습니다. SU-7은 152mm, 203mm, 305mm 주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SU-14는 107mm, 152mm, 203mm 주포를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B-4를 개발한 마그데시예바(N. N. Magdesiyev)와 SU-14를 개발한 샤친토바(P. I. Syachintov)가 체포된 후 1938년 8월 7일 자주포 개발 기획이 중단되었습니다.
강력한 자주포를 개발하는 기획은 1939년 말 재개되었습니다. 소련 붉은 군대는 핀란드 만네르하임 라인 공격 당시 대구경 주포를 장착하고 장갑은 가볍게 설계한 자주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1939년 12월 중순 소련 북서부 전선 사령부는 키로프 공장과 제185공장 설계국에 장갑이 가벼운 자주포 설계를 명령했습니다. 제185 공장은 두 가지 개발 기획에 착수하였습니다. 하나는 T-100 중전차 차체를 활용한 기획이며 다른 하나는 SU-14 장갑을 강화하는 기획입니다. 이미 제작된 자주포 장갑을 강화하는 것은 간단한 작업 같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겨울 전쟁이 종전된 지 일주일 후인 1940년 3월 20일이 되어서야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T-100 중전차 차체를 활용하는 기획은 더 오래 걸렸으며 이 기획으로 개발된 전차가 바로 130mm B-13 함포를 장착한 T-100Y입니다.
키로프 공장은 또 다른 방법으로 자주포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1월 북서부 전선 사령부의 요청으로 KV 중전차의 시제 전차(코드명 U-0)가 최전방에 배치되었으며 KV 전차 네 대에 적 방어 진지를 격파할 수 있도록 152mm 곡사포가 장착되었습니다. 대구경 주포를 장착할 수 있는 더 큰 포탑도 개발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쿠리님(N. V. Kurin)이 이끌던 제3 특수 설계국에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새로운 포탑을 개발하여 곡사포를 장착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원래는 1909년부터 1930년까지 운용하던 152mm L-21 곡사포를 장착하기로 하였으나, 152mm M-10 곡사포 포신을 짧게 만든 MT-1을 장착하였습니다. 1940년 2월 10일 새로운 주포를 장착한 U-0 시제 전차 개량형이 사격 시험을 통과하였으며 그로부터 7일 후 U-0와 U-1 전차가 최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거대한 포탑을 장착한 KV 전차는 2월 22일 첫 전투를 치렀으며 소련 군부는 3월 3일 같은 개량형 전차 네 대를 최전방에 추가로 배치하였습니다.
겨울 전쟁 종전 후 방어 진지 격파용 전차가 개발되었지만, 1940년 4월 말 시험 운행에서 기존 KV 전차보다 장갑 성능이 떨어지는 점이 발견되고 중량이 높아 제식 채용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포탑을 장착한 KV 전차는 적 진지를 격파할 때 일시적으로 운용되었으며 1940년 7월부터 양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돌격 자주포를 개발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쿠리님이 개발한 전차는 BT-7과 같은 지원용 전차의 좋은 예입니다. BT-7은 종종 BT-7A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두 전차는 전혀 다른 전차입니다. KV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한 자주포의 장점은 기존 전차와 부품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장착할 수 있는 주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소련 군부에서는 BR-2 주포를 장착하여 방어 진지를 공격하려 했으나 M-10T 주포만 해도 포탑 내부 공간이 부족하여 장전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회전 포탑이 장착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방향으로 사격할 수 있는 건 아니죠.
KV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한 Object 212
SMK와 T-100개발 기획은 중단되었지만, KV 전차를 현대화하여 중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1940년 7월 17일 소련 국방부는 법령 제198호를 제정하여 KV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법령에 따라 키로프 공장이 아래 조건을 만족하는 전차를 생산해야 했죠.
- 장갑 두께가 100mm이며 85mm F-30 또는 76mm 주포를 장착한 KV 실험 전차 2대
- 장갑 두께가 90mm이며 85-mm F30 또는 76mm F-32 주포를 장착한 KV 실험 전차 2대
- 152mm BR-2 주포를 장착한 실험 시제 자주포 1대
정면 장갑 두께가 90mm인 KV 전차에는 번호 150번이 붙었으며 기갑 부대 참모부에서는 T-150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1940년 11월에 제작된 T-150 전차는 76mm F-32 주포를 장착하고 전차장용 승강구가 있는 기존 전차와 외형이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T-150 전차는 이후 KV-3으로 이름을 바꾸어 KV-1을 대체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죠.
T-220 기획으로 제작된 전차는 KV 전차와 전혀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차체가 폭이 좁고 긴 형태로 설계되었으며 현가장치 바퀴가 양쪽에 각 7개씩 장착되었죠. T-220은 특별히 제작된 전용 포탑, 85mm F-30 주포, 850마력 V-2F (V-10) 엔진을 장착하여 1940년 12월 5일에 완성되었습니다.
1940년 8월 말에는 152mm 자주포의 설계 제원이 결정되었습니다. Object 212 개발은 키로프 공장에 맡겨졌으며 골부르트(Ts. N. Golburt)가 개발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Object 212는 장갑을 강화한 SU-14-1과 외형이 매우 비슷했습니다. 특히 전투실 배치가 비슷했죠. Object 212는 재설계한 T-220 차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엔진을 중앙에 배치하고 변속기, 구동륜, 조종실이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매우 넓은 전투실은 차체 후면에 배치되었죠. 이러한 배치 방식으로 자주포 크기가 매우 크게 설계되었습니다. 승무원 편의성을 확보한 것이죠. 또한, 전투실을 후면에 배치하여 152mm BR-2 주포를 모든 방향으로 사격할 수 있었습니다.
2백만 루블 이상이 Object 212 개발 작업에 사용되었습니다. 설계 작업에 10만 루블, 모형 전차 제작에 2만5천 루블, 설계도 제작에 30만 루블, 설계도 개선 작업에 7만5천 루블, 시제 전차 제작에 1백만 1천 루블, 시험 주행에 10만 루블, 수리 작업에 30만 루블이 사용되었습니다. 무장 가격은 포함되지 않은 가격입니다.
계획에 따라 첫 시제 전차를 1940년 12월 1일까지 제작해야 했으나, 설계 작업 중 많은 문제와 개선해야 할 사항이 발견되어 계획이 크게 변경되었습니다.
붉은 군대 기갑 부대 참모부 기록에 따르면 Object 212 부품은 1941년 1월에 준비가 완료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설계도 작성을 완료하여 이조르스키 공장에 전달해야 차체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죠. 총 1백만 5천 루블이 그때까지 소비되어야 했습니다. Object 212 기획은 T-150과 T-220 개발 기획을 먼저 완료해야 하여 연기되었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첫 시제 전차의 차체는 1941년 3월 5일 이조르스키 공장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완성된 부품이 부족하여 차체 제작이 지연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1941년 봄 키로프 공장에 T-150로부터 KV-3 전차명을 이어받을 중전차 개발을 급히 개발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Object 212 기획은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223번 전차로 명명된 전차는 T-220 설계를 기반으로 정면 경사 장갑 두께를 120mm로 강화하고 새로운 포탑에 107mm ZIS-6 주포를 장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Object 212 개발 기획은 1941년 중반 중단되었습니다. 붉은 군대 기갑 부대 참모부 기록에는 “KV 전차를 기반으로 한 자주포 개발” 기획 진행 상황 4월과 5월 항목에 “진전 없음”이라 적혀있습니다.
자주포 개발 기획의 재검토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후 자주포 개발 기획이 다시 검토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빠른 양산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전시 상황에 맞지 않는 기획이나 완료되지 않은 기획은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Object 212 개발 기획 역시 폐기되어야 했지만, Object 212의 운명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6월 26일 제정된 소련 인민 위원회 전차 산업 법령 제253항에 따라 KV-3 전차 생산 준비 작업이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설계팀, 제작 기술자, 시제 전차, 모든 자료가 첼랴빈스크 공장으로 이전되었죠. KV-3전차 한 대는 전선으로 배치되었으나 포탑과 일부 부품이 장착되지 않은 다른 한 대는 첼랴빈스크로 이송되었습니다. 1942년 2월 해당 시제 전차가 OP-2 실험실로 넘어갔습니다. 한편 1941년 8월까지 키로프 공장 장부에 남아있던 Object 212 개발 기획은 그해 8월 말 현재 예카테린부르크인 스베르들로프스크에 있는 우랄 중장비 제작 공장으로 이전되었습니다.
1941년 10월 당시 전차 산업은 KV-3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키로프 공장은 첼랴빈스크로 대피하여 이후 첼랴빈스크 키로프 공장으로 공장명을 변경했습니다. 한편 KV 전차 장갑을 제작하던 이조르스키 공장이 스베들로프스크로 이전하여 우랄 중장비 제작 공장이 이조르스키 공장으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우랄 중장비 제작 공장은 1942년 1월 4일 다시 원래 공장명으로 변경했습니다. 1941년 가을에는 제8칼리닌 공장과 제37 오르조니키제 공장이 후방으로 대피하여 우랄 중장비 제작 공장에 추가 작업이 부여되었습니다. 또한, V-5 엔진을 개발하던 제 75 공장이 첼랴빈스크로 이전되어 매우 시급한 V-2 디젤 엔진 생산도 떠맏게 되었죠. 152mm BR-2 주포 생산 상황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현재 볼고그라드인 스탈린그라드에 있었던 제 221 바리카디 공장은 1940년 이후로 해당 주포를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자주포의 중요성은 잠시 사라졌지만, 곧 다시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술적, 기술적 제원을 개발하는 단계였으며 설계도 제작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주포 개발을 담당한 공장 대부분은 1941년 여름과 가을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여 설비를 다시 갖추기 바빴으며 다른 공장은 더욱 급한 작업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었죠. 1942년 개발 작업 계획에 KV-3 전차 기획이 다시 등장했으며 1942년 5월 1일까지 개발 작업을 완료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 명령에 따라 1,200마력 2사이클 디젤 엔진 개발, V-2엔진을 1,200마력으로 강화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1942년 3월에는 152mm 주포를 KV 전차 차체에 장착하는 자주포 개발 기획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KV 전차를 기반으로 BR-2 주포를 장착하여 제작하는 기획입니다. 1942년 3월 첼랴빈스크에 설립된 인민 위원회 전차 산업 소속 제100 실험 공장이 차체 제작을 담당했으며 인민 위원회 무기 산업 소속 제8 공장에서 주포 제작을 담당하였습니다. 총 1백만 5천 루블이 개발 작업에 할당되었으며 시제 전차를 1942년 7월 1일에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획은 1942년 봄 새로운 방어 진지 공격용 전차 설계가 제안되어 완전히 폐기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