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역사 이야기 #4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사기사건

전차장 여러분, 

전장에 흐르는 긴장감만큼 전쟁 중에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가우디가 여러분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잘 알려진 사건부터 와전된 일화까지, 앞으로 가우디가 소개할 역사 이야기에 대해 많은 기대 바랍니다.

가우디가 소개할 네 번째 이야기는 포티튜드 작전(Operation Fortitude) 입니다.

역사상 가장 스케일이 컸던 사기사건: 포티튜드 작전


1978년 개봉한 영화 '스팅'은 남을 속이는 일이 직업인 전문 사기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치밀한 기획, 완벽한 구성, 기막힌 반전에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의 물오른 연기력까지 더해져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직업인 사기꾼도 한번 해 볼 만한 일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할 정도였죠. '스팅'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기획이 필요하고 많은 노력과 정교한 작업이 투입되는지를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 영화라 생각합니다.


사진 1. '스팅' 영화 포스터

역사적으로 영화 ‘스팅’만큼이나 현실에서도 완벽하게 전개된 사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국가를 통째로 속여버린 이 사건은 결국 전쟁의 판도를 뒤집었고 역사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사기의 결과로 한 나라가 패망하게 되었지만, 사건의 주범들은 세계적인 영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인천 상륙 작전의 모티브이기도 했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입니다.

1944년 6월 6일에 펼쳐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아이젠하워 장군의 지휘 아래 연합군 총 7개 사단, 항공기 13,000여 대, 6,000척의 선박이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습 상륙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당시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노르망디에 총인원 100만에 달하는 연합군이 상륙했고 서부 유럽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독일군은 소련과 마주한 동부 전선 외에 서부 전선마저 감당해야 하는 힘든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게 된 결정적 한 방이었을 만큼 치명적이었습니다.


사진 2. 노르망디에 상륙 중인 영국군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은 악천후에도 상륙을 결정한 연합군 사령부의 용단과 1년여 동안 치밀하게 기획되고 진행되어 온 어느 기만전술의 성공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1943년부터 시작된 연합군의 라운드업 작전(Round-up)이었습니다. 연합군은 영국으로 병사들을 집결시켜 독일이 점령한 유럽 본토로의 대규모 상륙 작전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역시 영국으로 속속 집결하는 대규모 병력의 이동을 관찰하며 연합군의 본토 상륙 계획을 예상하고 있었죠. 기습 상륙과 결사 항전을 다짐하던 양측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바로 ‘언제?’, ‘어디로?’이었습니다.


사진 3. 노르망디로 이동 중인 연합군 수송선

사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부대가 출발하는 즉시 예상 상륙지점에 병력을 이동하거나 증강할 수 있어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독일군은 최강의 전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상륙 지점과 시점만 파악하면 연합군 상륙 부대를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죠. 설사 상륙에 성공한다 해도 최강 독일군 전차 부대를 모래톱에서 맞게 될 경우 연합군 병사들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즉 연합군의 기습 상륙은 애초부터 연합군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독일군의 감시하에서는 불가능한 목표였습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연합군은 독일군 주축 제15군 병력을 유인하여 노르망디 외곽으로 끌어내기 위해 총 10개의 세부 기만전술로 구성된 바디가드 작전(Operation Bodyguard)을 기획합니다. 바디가드 작전의 주목적은 독일군에게 상륙 시기와 지점에 대한 거짓 정보를 제공해서 병력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습상륙이 불가능하다면 여러 가짜 상륙작전으로 적군을 교란하고 방어력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죠. 독일을 상대로 치밀한 사기를 기획한 것입니다.

연합군은 기만전술을 펼치기 위해 2개의 가상 상륙부대를 만들어 냈고 그 부대들이 다른 지점으로 상륙할 것처럼 다양한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바디가드 작전의 일부분으로 기획된 포티튜드 작전(Operation Fortitude)은 스코틀랜드에 25만에 달하는 가짜 병력을 만들어 내는 포티튜드 작전 - North 작전과 영국 남동부 도버 해협에 25만 가짜 상륙 부대를 만들어 내는 포티튜드 작전 - South 작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진 4. 상륙을 앞두고 영국에 집결된 연합군 무기

포티튜드 작전 – North에는 영국군 제4군이 동원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 주둔한 제4군은 25만의 병력과 전술 공군, 250여 대의 전차와 각종 중화기로 구성된 노르웨이 상륙 부대였습니다. 아니, 사실 독일군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죠. 이 부대의 목적은 서부 유럽의 독일 방어군 중 상당수를 스칸디나비아 - 노르웨이 방어선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유럽 본토의 독일 방어선을 얇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대는 영화 ‘스팅’처럼 모든 것이 가짜인 유령 부대로 어디까지나 독일군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진 5. 고무로 만든 가짜 Sherman 전차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 25만의 병사가 머무를 수 있는 텐트들이 세워졌고, 고무로 만든 가짜 전차와 가짜 트럭들이 배치되었습니다. 또한 독일군에 무수히 많은 부대 무전을 고의로 노출함으로써 마치 대규모 상륙 부대가 노르웨이 진격을 앞둔 듯한 상황을 연출해 냈습니다.

영국 공군(British Royal Air Force)도 독일군 정찰기를 의도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이 가짜 부대의 항공 촬영 자료가 독일군 수뇌부에 전달되도록 유도했습니다. 무전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은 독일군이 해독 가능한 옛날 암호 코드를 섞어 송신했습니다. 이런 연출에 당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독일은 가짜 부대의 상륙에 대비하여 병력을 분산시키는 부대 배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로써 작전은 성공하게 된 것이죠.


사진 6. 가짜 항공기

포티튜드 작전의 가장 중요한 배역은 조지 패튼 장군이 이끈 포티튜드 – South에 주어졌습니다. 1944년 1월 26일 아이젠하워 대장은 독일군 수뇌부가 유럽 상륙작전의 지휘관으로 패튼 장군을 꼽고 있던 것을 파악하여 패튼 장군을 시칠리 전선에서 복귀시킵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미 제3군의 지휘를, 공식적으로는 FUSAG(First United States Army Group)부대의 지휘를 맡겼습니다.


사진 7. 전차를 들어서 이동시키고 있는 괴력의 병사들

사실 FUSAG부대는 독일군에 노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새로 편성된 정예병력으로 프랑스 칼레 상륙을 꾸미기 위한 가짜 부대였습니다. 고무 전차, 고무 장갑차, 고무 대포, 고무 비행기, 가짜 막사로 구성된 병력 25만의 유령 부대였죠. 영국 남동부에 배치된 이 부대의 주목적은 독일군 전차 사단과 정예 병력 제15군을 이 부대의 목표 상륙 지점인 프랑스 칼레에 묶어두는 것이었습니다.


사진 8. 몇 분 만에 전차를 뚝딱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여준 연합군

독일군에게도 유명했던 패튼 장군과 가짜 부대의 실감 나는 연기 덕에 실제 노르망디 상륙일 당시 독일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기만전술이고 연합국 주력은 프랑스 칼레로 상륙할 것이라 믿은 것입니다. 독일이 제대로 속은 것이죠. 

연합군은 상륙 직후 첫 48시간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판단, 패튼 장군의 가짜 부대가 칼레 침공을 여전히 준비 중인 것으로 믿게 하고자 했습니다. 연합군은 1944년 5월부터 도버 해협 맞은편 칼레에 집중적인 폭격을 가했으며. 1944년 6월 5일, 6일 양일간에도 수천 톤의 집중 폭격을 칼레에 쏟아부었습니다. 또한 많은 무전과 거짓된 정보, 항공 촬영 등을 고의로 유출했죠. 


사진 9. 가짜 상륙 부대가 적군을 분산시킨 덕에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

대망의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동안 독일군은 이를 기만전술이라 믿으며 15만 명의 제15군을 칼레에 묶어두게 됩니다. 독일군이 기만전술에 속았다는 걸 깨달은 후 서둘러 제15군을 노르망디에 투입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전세는 독일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사진 10. 연합군 상륙 경로

1944년 8월까지 독일군이 분산된 덕분에 연합군은 비교적 수월하게 서부 전선을 확보하였고 총 100만의 연합군을 유럽 본토로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희생되었지만 만약 기만전술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훨씬 더 많은 희생을 치렀을 것이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역시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군 주력이 칼레와 스캔디나비아에 묶여 있던 덕분이었습니다.


사진 11. 노르망디에서 투항한 독일군 병사

앞에서 소개한 영화 스팅은 1936년 시카고 뒷골목을 배경으로 치밀한 준비와 화술로 갱 두목을 골탕 먹이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한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의 반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식스 센스(Six sense) 못지않은 반전으로 꼽고 싶습니다.

미국 기획, 영국 연출의 포티튜드 작전 역시 영화 ‘스팅’ 못지않은 탄탄한 구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첩보전으로 당시 악당들의 두목 독일을 멋지게 골탕 먹이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라는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 전쟁사의 명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성공 1년 후 전쟁은 종결되었습니다. 포티튜드 작전이 독일을 파국으로 이끈 기폭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결정적 기여한 포티튜드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별도로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인 재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글: 가우디 (외부 역사 전문 블로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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