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축제를 즐기는 기간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덮친 2020년에는 언젠가 함께 만날 미래를 기약하며 각자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전 세계를 휩쓴 1939~1945년 당시의 사람들 또한 "일상"을 그리워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이들은 가족, 친구, 연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습니다.
전장에서 각국의 군대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전쟁의 가혹한 현실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며 서로를 보듬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사진을 통해 만나보십시오.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클로스로 변장한 미국 175 보병 연대의 Hiram Prouty 하사.
당시 전쟁으로 인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할 수 있는 남성이 적어지자 일부 여성들이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산타클로스로 변장을 하고 백화점에서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모닥불 주변에 모여 크리스마스 선물을 확인하는 미국 제5 기갑 연대 병사들, 벨기에.
1940년대에 탄생한 노래 "I ’ll Be Home For Christmas"와 "White Christmas"는 당시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크리스마스 풍경, 이탈리아.
지하 벙커에서 지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산타클로스는 잊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눈 덮인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출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물을 섞은 가루비누 혼합물로 나뭇가지를 닦았습니다. 1940년대에 탄생한 전구 장식은 오늘날까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영국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장난감을 기부하는 벨기에 어린이들.
1941년에 1.5m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 가격은 75센트(약 800원)였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알루미늄, 주석과 같은 재료가 부족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직접 장식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종이, 끈, 솔방울, 견과류와 같은 전쟁 물자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여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였습니다.
런던의 한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카드 구입을 서두르는 사람들, 1941년 12월.
제2 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나무를 벌목할 인력과 이를 운송할 교통수단 부족으로 인해 실제 크리스마스트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조 크리스마스트리를 구입해야 했습니다.
1942년 12월 29일, 영국 전함에서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하는 해군 병사들.
1939년부터 영국의 BBC 라디오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국왕의 연설이 송출되었습니다. 이것은 연례 행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투 중에 맞이한 크리스마스, 벌지 전투
크리스마스 날에 영국 아이들을 위해 배급받은 초콜릿을 기부하는 미군 병사들.
당시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의 여행은 연료 배급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 아껴놓은 식량 배급 스탬프를 사용하여 푸짐한 크리스마스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한편, 영국군이 유럽의 전장으로 떠나있는 동안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미군 병사들을 크리스마스 행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초대받은 병사들은 배급 식량을 이들과 나누며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전차장님 모두 행복하고 건강한 연말연시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