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차는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했을까요? 이번 시간에는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전차들과 한국 기후 특성에 맞게 개량된 전차를 알아보겠습니다.
냉전의 시작 - 한국전쟁
2차 세계 대전은 1945년에 끝났지만, 그로부터 5년 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한반도는 중국인민지원군의 지원을 받는 북한과 미국 및 유엔군의 지원을 받는 남한으로 나뉘어 싸우게 되고 결과적으로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되게 됩니다.
비록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미국과 소련에 있어서 한국전쟁은 그들의 무기 성능을 선보일 수 있는 시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무기 기술은 2차 세계 대전 때보다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으며 두 국가는 여전히 2차 대전 시기의 전차를 운용했습니다.
중국 공산군과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VI T-34-85 와 VII IS-2 를 지원받았으며 유엔군은 성능이 향상된 VI M4A3E8 Sherman 과 VIII M26 Pershing 을 운용하였습니다. 경전차 V M24 Chaffee 와 대전차 자주포 VI M36 Jackson 과 같은 2차 세계 대전 후기에 등장하였던 많은 무기들도 한국전쟁에 동원되었습니다.
경전차 M24 Chaffee
대전차 자주포로 개발된 VI M36 Jackson 의 원래 디자인은 포탑에 지붕이 없는 개방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방형 포탑으로 한국의 추운 겨울을 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눈이 개방된 포탑 안으로 계속 들어와 쌓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탑 상단에 얇은 덮개가 추가되었습니다. 이렇게 덮개가 추가된 버전의 M36은 훗날 대만으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M36 Jackson
사실 한국전쟁에서 전차전은 많이 치러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쟁 시기 총 119번의 전차전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총 34대의 미국 전차가 파괴됐지만, 97대의 소련 T-34-85가 상대 전차에 의해 파괴되었고 다른 18대의 T-34-85는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격파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각 전차의 성능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미군의 전투 숙련도나 훈련 수준은 북한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승무원 기술 등 기타 전투 상황이 전차전의 승패를 좌우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영국은 당시로써는 비교적 신식 모델이었던 VII Comet 전차를 파견하였습니다. 이 Comet 전차 중 하나는 홍콩 해안 방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Comet 전차의 업그레이드 버전은 VIII Centurion Mk. I 으로 1950년대 서방 국가의 대표적인 전차이기도 합니다.
영국 Centurion전차
한국전쟁 이후 전차 개발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차체는 더욱 커지고 전차는 더이상 중형전차 또는 중전차로 분류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력 전투 전차" 또는 MBT(Main Battle Tank)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무선 장비 기술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무전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차 승무원은 4명으로 구성되어 인력 수요가 줄어들었습니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전쟁의 불씨는 1948년 이스라엘과 주변국들 사이에서 벌어진 제1차 중동전쟁으로 다시 타올랐습니다. 중동 지역 특유의 넓은 사막 지형은 전차전의 주요 무대가 됩니다.
좋은 성능의 전쟁 무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스라엘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서방 국가로부터 온갖 종류의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심지어 M4 Sherman에 105mm 포를 장착하여 "슈퍼 셔먼”이라 불리는 전차로 개조하기도 합니다.
반면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이집트, 시리아와 같은 국가들은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했습니다. 시리아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이던 독일 전차 VI Jagdpanzer IV 를 1967년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에서도 운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개조한 Super Sh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