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 안중근의사기념관 방문기

전차장 여러분 안녕하세요!

워게이밍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해 뜻깊은 장소를 방문하여 전자장 여러분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8 15일은 빛(光)을 되찾은(復) 날(節)이란 뜻의 광복절로서 1945년 8월 15일에 한반도가 일제에서 독립하여 국권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올해 광복 제74주년을 기념하여 워게이밍은 서울 중구 남산공원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1879년에 태어나 1910년 3월 26일, 32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 말기에 활약한 계몽 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에 교육산업과 민족의 계몽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제의 침탈이 사실상 국권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해외 무장투쟁의 길에 투신하였습니다. 하얼빈역에서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의거(義擧)를 하였고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개관한 박물관으로서 안중근의 어린 시절부터 서거까지 일생의 발자취를 관련 유물과 사진, 영상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으로 향하는 길에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먼저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념관 건물은 안 의사의 단지 동맹을 상징하는 12 기둥 형태의 건물로 지어졌으며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져 있는 인상적인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입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전시실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안중근 의사의 좌상을 만나게 됩니다. 실제로 보면 그 압도적 위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명가

전시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구한말 나라가 열강의 침략으로 몹시 혼란스럽던 1879년에 태어났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뛰어난 학문적 재능으로 명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해주 일대에서 이름난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또한 항일 독립운동의 명가로 15명이 독립운동의 공로로 서훈을 받았으며 안중근 의사는 최고훈장인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받았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천주교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가족 친지들은 이러한 안중근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고 안중근은 황해도 일대를 순례하면서 전도 활동에 헌신하였습니다. 또한 교인들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전시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빌렘 신부에게 보낸 엽서, 천주교 입교 사실이 기록된 자서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을사늑약과 해외 망명 계획

1905년 일사늑약 후 전국 각지에서 조약의 폐기를 요구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안중근도 어떻게든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구국 활동에 뛰어들게 됩니다. 적절한 항일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중국을 여행하지만 커다란 수확을 얻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는데 안중근을 기다린 것은 부친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안중근은 그 소식을 듣고 "무능한 조정과 부패한 관리에 대한 아버지의 한이 하늘같이 높은데 그 한 가닥도 풀어드리지 못한 내가 어찌 감히 백락지장을 즐길 수 있겠는가? 이제 나는 맹세코 우리 대한이 독립하고 외적이 물러나 2천만 겨레가 이 땅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맹세하였습니다. 실제로 안중근은 그 맹세를 지켜 그날 이후 죽을 때까지 그토록 즐겨왔던 술을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장투쟁을 위한 해외 망명

국내에서 교육사업과 계몽운동,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서 전념하던 안중근은 일본이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산림과 광산, 철도를 빼앗는 등 한국의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자 무장투쟁을 위해 다신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해외 망명의 길을 떠납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의 나이는 29이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안중근은 의병 활동에 가담하여 러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돌며 동포들을 상대로 의병을 모집하고 활동자금을 모금합니다. 또한 국내 진공 작전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한 의병 활동을 펼칩니다. 

전시관에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당시 의병활동 관련 사진과 일제 경찰이 의병 활동을 조사하여 올린 보고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단지동맹(斷指同盟)

국내진공 작전에서 패하고 친일단체 일진회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등 험난한 무장투쟁의 시간을 보내던 안중근 의사는 이듬해 1909년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습니다. 안중근을 비롯한 12명의 동지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자의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 이라 쓰고 국권 회복과 동양평화 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전시관에는 동의단지회 취지문과 당시 보도신문, 당시에 제작된 안중근 의사의 사진 엽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1910년대에 제작된 사진 엽서는 안중근 의사의 뜻을 따르는 이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엽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엽서 발매를 금지하고 압수하였습니다. 

하얼빈 의거

단지동맹 이후 그해 10월 중순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긴 안중근 의사는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합니다. 저격 직후 러시아 헌병들이 덮쳐 넘어졌던 안의사는 곧장 다시 일어나 힘찬 목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하고 순순히 체포되었습니다. 

이토의 죽음은 온 세계를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주요 신물들이 호외를 발행하여 그의 죽음을 전했고 국내외의 많은 애국지사와 국민들은 환호의 찬사를 보냈습니다. 

전시관에는 의거 순간의 모습이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고 의거에 사용한 권총과 총알, 안중근 의사의 저격을 받은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제 고관들의 총알 흔적도, 의거 현장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옥중에서의 투쟁

뤼순감옥으로 온 뒤 일본 검찰관으로부터 본격적인 심문을 받습니다. 이토를 살해한 이유를 묻는 검찰관의 질문에 안의사는 이토의 죄상 15개 항을 조목조목 열거하여 심문하던 검찰관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고국에서 달려온 두 동생이 한국인 변호사를 불러올 일을 논의하자 안의하는 "한 번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나다. 변호사보다 내게 성사를 베풀어 줄 신부님이 더 간절하다." 고 말하며 생사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영웅의 최후

결국 2월 14일, 일제에 의해 처음부터 의도된, 국제법을 무시한 부당한 재판의 결과로 마지막 공판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의병장다운 기품을 잃지 않고 공소권을 포기하는 데는 어머니의 성원이 있었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니라"라는 말을 아들에게 전하였다고 합니다.

사형이 확정된 이후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자서전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담은 많은 붓글씨를 써서 주변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의 옥중 유묵은 약 200여 점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 산재하여 있습니다.

안의사는 마지막 유언을 묻는 집행관에게 "나의 거사는 오직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바라건대 이 자리에 있는 일본인들도 나의 뜻을 이해하고 피차의 구별 없이 합심하여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데 힘쓰기를 기원하오." 라고 말하고 의연하게 교수대에 올랐습니다. 그의 나이 32세였습니다. 

안의사의 시신은 가족의 필사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일본인의 손에 의해 비밀리에 안장되었습니다. 안의사가 묻힌 곳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아직 안중근의사의 유해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도 염원하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32세의 짧은 삶을 오로지 민족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살아온 안중근 의사가 남긴 어록 한 구절이 오늘날 광복절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천국에서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동포에게 고함>

<기념관 안내>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 (남대문로5가 471-2번지) 
  • 관람 시간 : 하절기(3월~10월) / 10:00 ~ 18:00, 동절기(11월~2월) / 10:00 ~ 17:00
  • 관람료 : 무료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기념관 안내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이트 바로 가기]

애플리케이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다운받으면 음성해설과 함께 전시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지원, 안드로이드용)

[앱 다운받기 ]

※ 본 콘텐츠의 모든 내용은 안중근의사기념관 협조하에 작성되었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