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게이밍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해 뜻깊은 장소를 방문하여 전자장 여러분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 100주년으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건립된 최초의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망명정부로서 현대의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주석을 지내고 민중의 교육, 대한민국의 독립,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워게이밍이 방문한 곳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 김구 기념관입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서 김구의 어린 시절부터 서거까지 일생의 발자취를 관련 유물과 사진, 영상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1층으로 들어서니 김구 선생의 좌상과 태극기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1층 전시관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김구 선생의 저서 <나의소원>에서 발췌한 유명한 문구가 정면에 걸려있었습니다. 김구 선생께서 바라시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마음에 새기면서 전시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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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를 지나면 초상화와 함께 김구 선생께서 일생을 바치신 활동들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임시 정부 활동뿐만 아니라 민중 교육 활동, 독립운동, 의열투쟁, 군사 활동, 통일운동 등 다방면에 걸쳐 나라를 위해 힘쓰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1층의 전시관은 김구 선생의 출생부터 시작하고 있는데요 난산 끝에 태어난 아기가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지나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다소 평범했던 유년기를 애니메이션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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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의 만연한 부정부패에 실망한 뒤 이를 통해 관직에 오르는 뜻을 접은 청년기의 김구는 동학사상과 관상을 공부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사상을 탐구하게 됩니다.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어느 주막에서 당시 그의 이름 -김창수를 세상에 처음 알리게 되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치하포 의거’라고 불리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을 처단한 것입니다. 우연히 들른 주막에서 일본군을 만난 김구는 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이거나 공범일 것 같다는 확신을 하고 그 자리에서 일본군을 처단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구는 감옥에 수감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지만, 고종은 사형집행 정지 명령을 내렸고 이내 탈옥을 하게 됩니다.
전시관에서는 이 치하포의거에 대한 설명을 짧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김구 못지않게 훌륭한 성품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과 김구 선생님의 험난했던 옥중 생활 증언이 전시관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김구는 옥중생활 동안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도 감옥의 뜰이나 유리창을 닦으며 ‘우리도 어느 때 독립 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문지기가 되기를’ 기원하였다고 하니 조국 독립에 대한 한없는 열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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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임시정부의 이동 발자취를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상하이에서부터 충칭까지 타국 중국에서 끊임없이 옮겨 다녀야 했던 당시의 고단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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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2층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성했던 인물들의 커다란 단체 사진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에 수립되었는데 3.1 독립선언이 발표된 후 국내외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인사들이 ‘독립국’을 세우려는 목표로 상하이로 모여들었습니다. 곧 제1회 회의를 열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헌법으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였습니다. 이로써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게 됩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토록 많은 분이 타국땅 상하이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쓰셨다고 하니 다시 한번 감사함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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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선언서, 임시정부 발행 여권,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 모형 등 다양한 유물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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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1931년 한인 애국단을 창설하여 조국광복을 위한 의열 투쟁들 전개해 나갔습니다. 한인 애국단원인 이봉창, 윤봉길, 이덕주, 유진식등이 특공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와 이봉창 의사의 히로히토 천황을 겨냥한 도쿄 수류탄 의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의거의 배후로 알려지게 되자 일제는 중국 은화 60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는데 이때 일제가 내놓은 60만 원은 2019년 현재 355억 원 정도의 가치라고 하니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제에 준 충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 안에서는 당시 의거를 보도한 신문과 사진, 의거 직전 나눠 가졌던 김구 선생의 시계와 윤봉길 의사의 시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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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또한 한국광복군 창설을 주도하였는데 미주교포들이 보내온 자금을 바탕으로 1940년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중국 곳곳에서 활동한 것을 비롯해 영국군과 함께 대일항전을 전개하였고 미국의 전략첩보기구 OSS(CIA의 전신)와는 ‘독수리 작전’이란 공동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 교과서에서 배운 ‘백범일지’입니다. 백범일지는 김구가 직접 쓴 자서전으로 상,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백범일지의 상권은 두 어린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 형식으로 집안 내력과 자신의 일생을 중심으로 쓴 글이고 하권은 의열투쟁 직후 중국으로의 피신 생활과 해방되기까지의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백범일지는 독립 운동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보물 1245호 지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출판된 백범일지 서적들과 보물로 지정된 백범 김구의 친필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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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하이에서 다른 독립운동가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다 어머니와 부인, 아들이 상하이로 오면서 비로소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나 둘째 아들을 낳은 직후 부인이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은 부인의 투병 생활에도 일제의 감시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으며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시관 2층을 둘러보다 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함께 김구 선생의 묘소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습니다. 생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었던 부인 최준례 여사와 합장된 묘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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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를 기반으로 통일 정부를 수립하고자 평화통일 운동을 전개하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서거하였습니다. 김구 선생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장의 행렬은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오후 늦게 효창원에 도착하여 유해가 안치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장례식 모습이 사진과 영상에 담겨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흉탄에 맞았을 때 입고 있던 피로 물들어진 옷, 데스마스크, 생전에 사용했던 신발과 도장 등 다양한 유물들이 김구 선생의 마지막 순간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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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 따로 마련된 전시관은 임시정부의 다양한 외교전략들을 시대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관심 많은 전차장 여러분들에게는 실제 사진과 함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전시관을 나서기 전 스탬프코너에 들렸습니다. 오늘의 관람을 기억할 수 있는 보람된 기념물이 될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이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김구 선생의 저서 <나의 소원>에서 발췌한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이번 방문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수립 의의를 알게 되고,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쳐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