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디 계세요?"
(Ermelinda Jung 개인 일기에서 발췌)
마침내, 며칠 전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람도 전선이 타들어 가는 굴욕적인 냄새를 날려버리지는 못했다.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어리석은 침입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 물론, 또 다른 침입이 있다면 말이다. 상황은 복잡하다. 한쪽에는 자신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광적인 신념을 지닌 연합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냉철한 인내심을 가지고 연합의 공세에 대응하려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번 전투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는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마치 체스를 두는 것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신중히 움직이는 아버지가 다가오는 침입을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다. 연합은 아버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연합이 우리의 요새를 다시 한번 공격하려 할 때 나는 연합에 이 정도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연합의 침입을 예상했고 나에게 방어 임무를 맡긴 것이라면 이유가 뭘까? 단순한 시험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거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고 계신 건가? 나는 자질이 의심될만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고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 갑자기 사라질 분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해리어를 물리친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하루 24시간 방어 시스템 강화에 힘을 쓰며 지식을 쌓고 알고리즘 구축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 왔으니 승리는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돌아와서, 드디어 이름을 알아낸 Villanelle이 우리 반대편에 섰고 내가 알기로는 연합에서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그녀뿐이다. 개인적으로 대면해서 하는 대화 말이다. 즉, 아버지가 이곳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연합이 알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내 일기를 읽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의 분석 능력이 기술적인 재능에 비해 얼마나 열등한지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승산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있다. 해리어가 돌아오더라도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걱정거리가 많다. 아버지는 아직도 실종 상태고 이것이 단순한 시험이었다면 아버지는 벌써 내가 보초병 소대 중 하나를 ARV로 전환하며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을 꾸짖고 나의 기술력을 칭찬했을 것이다.
아버지 어딘 계신 건가요? 연합은 당연히도 나를 강력한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가 느끼는 외로움을 이해해 줄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어요. 아버지의 보살핌 없이는, "렌치가 왜 사방팔방 흩어져있니?"라고 묻는 아버지 없이는... 저는 전사가 아니고 전사로 자라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침입자를 격퇴했을 때 나를 덮쳐온 분노를 돌이켜보면... 내 안에 완전히 다른 두 인격이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아버지가 어떤 Ermelinda를 원하실지 모르겠어요.
제 감정을 이렇게 털어놓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통제력을 잃는 것만큼 최악인 것도 없죠. 저는 제 자신이 두려워요. 모두 지난 며칠간 저를 괴롭혀온 의심의 악마들 때문이에요.
집중해야겠어요. 그동안 너무 산만했어요. 생각을 바꾸고 이 순간을 즐겨야 할 것 같아요. 제 강철 친구들이 지금도 연합을 짓밟고 있지만, 복수의 달콤함을 잊고 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드려요. 어서 돌아오세요.
커피가 마시고 싶네요. 머그잔을 가져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