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62일차
1950년 8월 25일 금요일, 날씨: 맑음
사진 속 시간은 1950년 8월 25일에서 멈췄습니다. 당시 전시 상황은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 이후 경상북도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대규모 집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군과 유엔군 의 공격 개시에도 북한군은 소련에서 지원받은 탱크 30대와 여러 무기를 앞세워 반격을 나섰습니다.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던 우리 군은 하루하루 위기의 나날이었지만 더는 물러설 곳은 없었습니다. 최후의 방어선마저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면 암울한 역사가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북한군은 최후의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해, 우리 군은 끝까지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는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15일까지 북한군의 점령 지역 변화
다부동 전투: 달걀로 바위를 깨다
그중 다부동 전투는 대구까지 공략하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혈전을 벌인 전투입니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9월 22일까지 진행된 전투로, 북한군의 약 21,500여 명의 병력과 소련에 지원받은 T-34 전차 약 20대, 각종 화기 670문의 공격을 막아야 했습니다. 이 병력에 맞설 우리 군은 고작 7,600여 명이었습니다. 이마저도 총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학도병을 포함한 인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열세였지만 다양한 전술과 투지로 북한군에 맞섰습니다. 특히, 김점곤 중령은 특공대를 편성해 적 전차 4대를 파괴하는 등 다부동 전투에서 뛰어난 전술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다부동 전투에 투입된 7,600여 명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낙동강 전선 최대의 격전지인 다부동을 수호하고 반격 작전을 개시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형산강 방어 전투: 포항을 탈환하라
비슷한 시기인 1950년 8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는 형산강 지역 일대를 방어하기 위한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북한군은 경주 방어의 요충지대를 점령하고 형산강 도하작전을 위해서 5사단, 12사단, 유격부대인 766부대를 작전에 투입합니다. 서남쪽으로도 안강지구를 향해 북한의 제766부대가 진출하고 있었고, 동해안에는 해안지대를 따라 계속 남진한 끝에 포항을 점령합니다.
후퇴를 거듭하던 우리 군은 포항만큼은 탈환해야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만큼 우리 군은 3개의 독립부대를 투입, 북한군을 막기 위한 형산강 전투를 시작합니다.
당시 포항 형산강 지역 인근에는 우리 군의 비행장이 있어 북한군에게 이 일대를 빼앗긴다면 공군의 발목이 묶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략요충지로서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것입니다.
포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일화로 3사단 22연대 1대대 소속 선임관 연제근 상사(당시 이등 중사)의 이야기입니다.
연제근 상사는 형산강을 탈환하기 위한 전술로 도하작전을 구상합니다.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아군의 도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13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돌격을 감행하였습니다. 도하 도중 연제근은 적의 기관총 유탄에 어깨를 관통당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적탄에 장렬히 산화하였습니다. 연제근 상사를 비롯한 특공대의 장렬한 산화는 이후 성공적인 도하작전뿐 아니라 포항 탈환과 북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우리 군 2,301명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결과였습니다.
6.25전쟁 발발 후 2개월간 수많은 사람이 국가의 부름에 응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로 향했습니다.
1950년 8월 25일, 사진 속 태극기와 함께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군인들도 한 가정의 부모, 형제, 자식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그 모습을 67년이 지난 2017년, 그때의 그 시간을 현재로 복원했습니다.
67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아직 우리는 '종전'국가가 아닌 '휴전'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1년 열두 달 중 6월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호국, 보훈의식 및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달입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담긴 이분들의 희생정신이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한 컬러사진으로 기억되길 바라봅니다.
참고 사이트: 국가보훈처 블로그
참고 문헌: 6.25 전쟁 1129일, 이중근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