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로운 신년
- 보주산맥의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 축구
- "이런 파이는 난생처음이군!"
- 수심 20m에서의 크리스마스
- 1945년 신년 축포
- 영국과 독일의 크리스마스 휴전
- 집으로
-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 신년 맞이 이야기
전차장 여러분,
연말연시는 친구와 가족이 모여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전선에서 연말연시를 보내는 병사에게는 의미가 전혀 다른 시간이죠. 2019년 연말연시 작전은 전쟁 당시의 전통과 실제 일어났던 일들, 병사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는지를 기념하며 준비했습니다. 1914년 벨기에 이프르에서 임시 축구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군과 적군을 넘어 짧은 생애를 보내고 간 전우에게 어떻게 작별인사를 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현재 워게이밍 역사 팀은 세계 곳곳에서 전시에 병사가 어떻게 연말연시를 보냈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준비했습니다. 아래에서 올해 연말연시 작전의 배경이 된 이야기를 자세히 확인해 보십시오.
아나톨리 페도로비치 자르바(Anatoly Fedorovich Zarva)가 1944년 신년에 관하여 회고한 내용입니다. 제1근위전차군에 사령관 Katukov 장군이 군사평의회 소속 Popel 장군과 함께 부대에 방문하여 장병들을 격려하고 격전에서 보인 활약을 치하하였습니다. Zarva가 복무했던 제20 동력화 근위 소총 사단은 전선 수비 중이었지만, 당시 전선 상황은 비교적 평화로웠습니다. 병사들은 평화로운 신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식단도 몹시 푸짐하였습니다. 병사들에게 신년 선물로 초콜릿 바, 사과, 우유 한 잔이 지급된 것입니다. 전쟁 당시 전차병들에게 우유는 흔히 볼 수 없는 꿈의 식품이었습니다.
"독일 병사들이 잠든 1월 1일 이른 아침, 제20 동력화 근위 소총 사단 사령관이 집합 명령을 내리고 장병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달하였습니다.
몇 시간 후에는 소련군과 대치 중이던 독일군이 전쟁 초기부터 마음에 든 소련 민요 "Katyusha"를 불러 소련군에 새해 인사를 건넸습니다."
독일 장교 리하르트 쉬르만(Richard Schirrmann)이 1915년에 관하여 회고한 내용입니다. 프랑스 북동부 보주산맥의 버나드슈타인산 인근 지역에서는 좁은 무인 지대 양쪽으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대치 중이었습니다. 쉬르만은 "부서진 나무와 뿌리가 널부러져 있는 황무지를 포격으로 갈아엎은 풍경이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밤에 두 군대는 서로 포격을 중지하였습니다.
쉬르만은 보주 마을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적대감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두 부대는 전투를 중지하고 버려진 참호를 간이 쉼터로 개조한 뒤 서로 방문하여 빵, 과자, 햄 등 식량을 교환하였습니다. 쉬르만은 두 부대가 이후에도 친구로 남을 만큼 행복한 하루였다고 하였습니다.
쉬르만은 이 일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하루 정도 숙박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저가형 숙박 시설인 호스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중립 지대에서 병사들이 선물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친분을 쌓고 있었습니다. 격렬한 포격이 멈춘 틈을 타 전사한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즉석에서 제작한 공으로 축구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지자 마음이 편해진 영국군은 축구를 즐기기 시작하였고, 독일 병사들이 참여하면서 완전한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두 부대는 서로 팀을 구성하고 규칙을 논의하였습니다.
경기는 당시 축구 규칙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에 서 있던 바위 2개를 골대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경기는 3대 2로 독일팀이 승리하였습니다.
티모페이 쿠티긴(Timofey Kutigin)이 1944년 신년에 관하여 회고한 내용입니다. 쿠티긴의 동료였던 50대 후반의 카프카스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아르구틴은 퍄티고르스크와 날치크 지역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르구틴은 보관소에서 밀가루를 가져다 파이 반죽을 만들고 일일 전투 식량에서 고등어와 완두콩 죽을 따로 빼서 속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참호에 불을 피워 파이를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파이 냄새를 맡고 고향을 떠올린 병사들이 참호로 모여들었습니다.
자정이 되기 몇 시간 전, 무전기수가 전투 명령을 전달하였습니다. 병력이 전투 배치를 마치자 대대장이 말했습니다. "전원, 1944년 새해에도 잘 부탁한다. 곧 전쟁이 끝나고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불꽃놀이를 즐기고 가도록! 전방 적군을 향해 빠르게 3발 사격 실시!"
부대가 다시 참호로 모이고 파티 주최자인 쿠티긴이 짧게 연설을 시작할 때, 적군이 똑같이 "불꽃놀이 사격"을 실시하였습니다. 떨어지는 먼지가 파이에 묻지 않도록 바닥 깔개를 이용하는 병사도 있었습니다. 포격이 끝나고 저녁 식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신년 일화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쿠티긴은 그런 파이는 난생처음 먹어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라인하르트 하르게덴(Reinhard Hardegen)이 이끄는 잠수함 U-123 항해 일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비스케만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모든 격실에 전구로 장식한 인공 전나무가 전달되었다. 크리스마스 기념행사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수병들에게 고향에서 온 편지와 선물이 전달되었다. 각 격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어졌다.
마이클 개넌(Michael Gannon)의 저서에는 더욱 생생한 목격담이 담겨 있습니다. 해당 저서에 담긴 일화에는 독일 잠수함 수병들의 일상에 기념행사가 갖는 중요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은 기념행사 참가자들이 직접 전달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U-123 함장 라인하르트 하르게덴은 기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을 거라고 예상하였지만, 출항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르게덴은 잠수함 내에서 크리스마스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직전에 출항하게 된 수병들의 기운을 북돋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항해 첫 날인 12월 24일, 하르게덴은 급속잠입을 명령하였습니다. 잠수함 심도가 20m에 도달하였을 때 하르게덴은 수화기를 잡고 U-123 수병들에게 인사를 전했습니다.
"함장이 전달한다." 수병들은 임무에 관한 주요 소식이 전달되리라 생각하고 긴장하였지만, 곧 즐거운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르게덴은 수병들에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아무 방해도 받지 않도록 심해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전달하며 잠수함에서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비번인 선원은 모두 중앙 통제 격실로 집합하였습니다.
수병들이 통제실에 집합하였을 때 장교들은 모든 격벽에 둘 전나무를 준비했고 분배를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 가장 큰 전나무는 통제실에 두고 전기공이 전구로 장식하였습니다. 또한, 항해사가 준비한 케이크와 요리사가 구운 파이도 있었습니다.
수병들을 위한 선물은 아직 끝이 아니었습니다. 갑판장교 호르스트 폰 슈뢰터(Horst von Schroeter)는 산타의 조수 역할을 자처하며 고향에서 온 선물과 편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명심해라, 나쁜 아이는 벌을 받을 것이다!" 하르게덴이 농담으로 말하였습니다.
하르게덴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수병들은 소식과 선물, 크리스마스 기념행사에서 사기를 얻었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샤스툰(Ivan Denisovich Shastun )은 전쟁 중 있었던 신년 행사 중 1945년에 경험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앞선 1944년에는 체르카시 수복 이후 스밀라와 티아스민강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져 신년을 기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 항복 이후 샤스툰의 부대는 폴란드로 향하여 전선에서 약 10km 떨어진 비슬라강 부근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기온이 -1도~1도로 떨어져 바위로 된 바닥에 참호를 파야 했습니다.
참호 세 군데를 만든 병사들은 난로를 설치하고 불을 피웠습니다. 동료들은 난로에 둘러앉아 신년 인사를 주고받으며 승리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축포가 이어졌습니다. 모두 밖으로 나가 보유한 무기를 전부 발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제1 우크라이나 전선 사령관이 진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샤스툰은 제373 소총 사단의 포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베강에서의 전투와 승리가 이어졌습니다. 이들이 느꼈을 승리의 기쁨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아직 프라하라는 마지막 목표가 남아 있었습니다.
1914년 12월 24일 저녁, 영국 병사들이 이프르 인근 전선에서 이상한 현상을 포착하였습니다. 적군 참호가 수많은 촛불로 장식되었고 독일 병사들이 'Stille Nacht, Heilige Nacht(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노래를 끝까지 듣고 따라 불렀습니다. 독일군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응답하였습니다.
전선 다른 구역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 병사들이 참호를 나와 서로 선물과 음식을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주로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국토를 지배하고 많은 도시와 마을을 파괴한 과거 때문에 적군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한 국가의 반응은 서로 달랐습니다. 영국 언론에서는 병사들이 가족에 보낸 편지를 게재하며 기적을 알렸습니다. 영국 최대 유력지인 Daily Mirror와 Daily Sketch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호의를 베푸는 사진을 인쇄하였습니다.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반대로 독일 언론은 해당 사건에 관해 다루지 않았고, 전선에서 발송된 편지는 모두 검열되었으며 병사들은 편지에 크리스마스 휴전에 관한 내용을 쓸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언론은 모든 크리스마스 휴전 활동이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의 전선에서만 이루어졌으며 프랑스 병사들은 1명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제1 오렌부르크 코사크 연대 브도브킨(N. A. Vdovkin) 대위가 갈리시아 리마노프에서 기병 정찰을 지휘할 때를 회고한 내용입니다. 근처에는 적군이 점령한 고지대가 있었습니다. 소규모 접전 이후 코사크 부대는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지키는 오두막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오두막에 침입한 정찰 부대는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적군 장병 30명을 생포하였습니다. 포로들은 마을의 빈집에 감금되었습니다. 코사크 부대가 말에게 먹이를 줄 때 병사 한 명이 브도브킨에게 포로 한 명이 면담을 요청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브도브킨은 면담에 응하였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 깜짝 놀란 브도브킨이 되물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정신인가?"
"예, 바로 이 앞입니다만..." 포로가 말했습니다.
"뭐가 이 앞이란 말인가?" 브도브킨이 물었습니다.
"제 집말입니다. 늙은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발 부탁 드립니다. 내일은 성탄절 휴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탄절 휴일? 크리스마스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포로가 말했습니다.
"이름이 뭔가?"
"조셉입니다." 포로가 손을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성모의 남편 성 조셉과 같은 이름입니다."
"갔다 오게!" 브도브킨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셉, 돌아오지 않고 나를 실망하게 하면 성모가 용서하지 않을 걸세..."
브도브킨이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60년 후 브도브킨은 바로 다음 날 아침 조셉이 돌아와 다시 포로가 된 것과 내전 때 타우리야에서 조셉을 다시 만난 것을 회고하였습니다. 조셉의 가족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브도브킨을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참호에 촛불을 놓고 전나무를 꾸미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군의 노래를 끝까지 들은 영국군은 영국의 캐럴로 응답하였습니다.
두 부대는 서로 상대방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습니다.
독일군이 먼저 어눌한 영어로 "영국인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자 영국군에서 "너희도! 너무 소시지만 먹지 말라고!"라고 답하였습니다. 곧 양쪽의 병사들이 무인 지대로 나와 음식과 단추, 모자 등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습니다. 포성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여 전선 뒤에 묻어줄 수도 있었습니다. 시신 수습 활동이 합동으로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시 휴전에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적군의 공격을 받는 병사도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구역에서 휴전은 크리스마스 밤에만 진행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신년까지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영국군에서 복무한 브루스 베언스파더(Bruce Bairnsfather)는 "그 특이한 크리스마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칠 수 없는 날이었다. 소위 정도로 보이는 독일 장교를 보고 수집가 기질이 발동한 나는 단추가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한 뒤 가위를 꺼내 재빨리 몇 개를 떼어내고 답례로 내 것 2개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밖에서 아마추어 미용사로 활동하던 동료 기관포병이 적병의 머리를 잘라주는 광경이었다. 적군 병사는 '자동 이발기가 목 뒤를 자를 동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라고 남겼습니다.
영국 제2 군단 사령관 호레이스 스미스 도리엔(Sir Horace Smith-Dorrien) 장군은 보고를 듣고 몹시 분노하여 적군 독일 부대와의 우호적인 소통을 금지하였습니다.
전쟁도 다가오는 신년을 막진 못합니다. 신년을 본격적으로 기념하려 한 용맹한 대공포병이 있었습니다. 37mm 포탄 탄약고에 작은 자작나무를 두어 휴일 전투 식량의 보존 랩으로 장식하고 꼭대기에는 밝은 랩으로 감싼 사탕을 두었습니다. 소시지 통조림, 미국 고기 통조림, 설탕 덩어리, 뜨거운 찻주전자로 만찬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눈으로 동화에 나오는 산타클로스와 조수를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겨울 극지방에는 눈이 허리에 닿을 정도로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표트르 이그나티예비치(Petr Ignatyevich)는 사단 장교가 신년을 축하하며 승리와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망 덕분인지 해당 부대 병사들은 모두 전쟁이 끝나고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병사들은 각자의 집에서 신년을 맞았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지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카잔 출신인 나시프(Nasyp)는 새해에 차크차크와 양고기 슈르빠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스테판(Stepan)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체리 만두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두 연말연시 작전과 함께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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