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장 여러분,
자주포를 자주 격파하는 전차장이라면 이미 업적란에 이 훈장이 전시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요시오 타마다 훈장입니다. 경전차로 자신의 전차보다 1단계 이상 높은 자주포 2대 이상을 격파하고 전투에서 생존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훈장의 실존 인물은 과연 어떤 활약을 보여주었을까요? 훈장 뒤에 숨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
요시오 타마다는 1891년 9월 23일 일본 니가타 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1913년 22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중위로 졸업하며 그의 본격적인 군사 경력이 시작됩니다.
1935년에 그는 중령으로 진급하고 1936년 육군 전차 학교 교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전차 부대 임무에 그다지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 여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1937년 7월 7일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요시오 타마다는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1939년 소련군, 몽골군, 일본군, 만주군 사이의 국경 분쟁으로 일어난 할힌골 전투에서 타마다의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이때 35대의 경전차 Type 95, 8대의 중전차 Type 89, 3대의 경장갑차 Type 94로 구성된 제 4전차연대를 지휘하였습니다.
1939년 7월 2일 오후 6시 10분, 타마다의 제 4전차연대는 소련의 포격을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시각은 오후 8시, 뒤에서 따라오던 제 3전차연대가 소련을 상대로 전투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 시각 타마다의 전차연대는 소련의 공격을 피하며 다른 방향으로 진격 중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타마다는 자신의 전차연대와 목적지 사이에 소련 포병 중대가 포진해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타마다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을 개시 명령을 내리고 밤 11시경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였습니다.
자정 직후 전장을 강타한 번개 폭풍이 소련군의 위치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반면 전진 중인 일본군의 위치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곧이어 내려친 번개 빛이 이번엔 일본군의 위치를 완전히 노출했고 이에 소련군은 사격을 개시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소련군의 공격은 일본군의 전진을 막기엔 부족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타마다는 진격 명령을 내렸고 제 4전차연대는 소련군의 방어선을 약 914m 뒤로 후퇴시켰습니다. 이 공격으로 타마다는 소련군에게 다음과 같은 규모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 122mm 곡사포, 107mm 포, 76.2mm 야전포로 무장한 4개의 포병 중대
- 장갑차 12대
- 대전차포 7개
- 박격포 5개
- 트럭 20대
전투가 갈수록 치열해지자 타마다의 전차연대 병사들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패배를 예감한 타마다는 자결을 고려합니다. 그러나 잠시 뒤, 그의 연대 병사들이 다시 결집하여 전투에 참여하였지만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을 순 없었습니다. 타마다와 병사들은 결국 철수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전투 중 잃어버린 전차 한 대가 소련군에 의해 노획되자 타마다를 향한 군 상부의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그를 변호하기 위한 상사의 노력 덕분에 타마다는 위기를 벗어나 훈련 임무에 배정되고 이후 1944년 뉴기니에서 벌어진 전투에 다시 참여합니다.
지금까지의 훈장 이름의 유래 시리즈에서 다뤄졌던 인물들과는 달리, 타마다는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군을 떠나 1956년에 고향 이토이가와에서 교육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