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쿠치

루이지 아르비브 파스쿠치(Luigi Arbib Pascucci)

불타는 로마 전사의 혼

   

일반적으로 '제2차 대전 중의 이탈리아군'이라고 하면 '약체'라거나 '싸우면 패했다.' 정도로 낮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탈리아군도 적절한 지휘를 받고 거기에 용기가 더해진다면 불굴의 투지를 보인 예가 왕왕 있었는데, 루이지 파스쿠치 중위와 그의 전차 소대가 목숨을 걸고 벌인 처절했던 지연 전투도 그중 하나였다. 로마 출신으로 로마 라 사피엔짜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대로 기업가가 된 것이 아니라 동경하던 군문에 들어서고자 1934년에 입대, 1936년에는 보병에서 전차병과로 전과하게 된다.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에서 근무한 후 1937년에 예비역이 되면서 이대로 군 생활을 접는 듯했지만, 1939년에 발발한 제2차 대전이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그는 전차 에이스는 아니지만,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아군을 위해 기꺼이 전차를 몰고 화염 속으로 뛰어든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훈장 이름의 유래

몽고메리의 펀치

아리에테 전차사단 소속의 피아트 M13/40 전차. 진귀한 당시의 컬러 사진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 독일, 이탈리아 연합군과 함께 등장한 독일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원수는 많다고 할 수 없는 부대와 전차를 가지고 신출귀몰한 부대의 기동과 타격 작전으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으며 명장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그의 이집트로 향한 진격은 보급선이 길어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고, 영국이 풍부한 물자와 함께 신중한 판단을 장기로 삼는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장군을 지휘관으로 내세워 반격에 나서자 궁지에 몰리게 된다. 몽고메리 장군은 이집트로 진격하자면 거쳐야 하는 길목, 엘 알라메인에 견고한 방어선을 치고 허위 정보까지 흘려 독일군을 기만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1942년 7월 1일, 드디어 롬멜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엘 알라메인(El Alamein) 방어선 전면에 대해 전격적인 공세를 가하지만, 영국군의 기만작전에 수 겹으로 쳐진 철조망-지뢰밭-대전차 방어선의 연쇄에 걸려 대 피해를 보고 만다. 전쟁으로 재소집된 파스쿠치 중위는 이탈리아군 제132 전차사단 '아리에테'(Ariete) 소속으로 피아트 M13/40 전차 중대장으로 참전, 기동 정찰 및 소규모 적과의 교전 등으로 격전을 치르며 전장 속을 달렸다. M13/40는(아직 이탈리아 트리가 없어서 게임에선 만날 수 없다) 중형 전차로 최고 시속 32km에 장갑은 최대 42mm, 거기에 47mm 47/32 M35 주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 전선 초기라면 그렇게 나쁜 성능은 아니었지만, 영국군이 Crusader(영국 5단계 경전차), M3 Grant(포탑 형태만 다른 미국 4단계 중형 전차 M3 Lee가 게임에 등장.), M4 Sherman(미국 5단계 중형 전차) 같은 영국제, 미국제 신형 전차들을 속속들이 사막의 전장에 선보이자 M13/40을 포함한 이탈리아 전차들의 성능은 한계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파스쿠치는 장갑판에 날달걀을 올리면 익을듯한 열사의 전차 속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며 전차전을 치렀다.

 그의 전차에 탑재된 47mm 주포는 영국군의 경전차는 상대가 가능했지만, 중형 전차를 만나면 약점 부위를 맞추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다. 거기다 좋지 않은 기동성까지 발목을 잡았지만, 파스쿠치의 중대는 매복과 상대 전차의 약점을 때리는 방법으로 전장에서 살아남아 갔다.독일, 이탈리아군은 7월 한 달 가까이 주공을 옮겨가며 싸워 보지만 거침없을 것 같던 아프리카 군단의 진격은 여기서 몽고메리의 영국군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톱니바퀴는 결전을 향해 구르고

롬멜 장군은 몽고메리가 영국군을 이끌고 공세로 나온다면, 결국 양측의 대치점인 엘 알라메인이 될 것으로 보았다. 엘 알라메인은 공격이 가능한 앞쪽을 빼면 옆으로 전차 기동이 거의 어려운 지형이 펼쳐져 있어서 공격 측에게는 불리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롬멜이 지병으로 인해 독일로 돌아간 사이 독일, 이탈리아 추축군(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3국 동맹군을 의미)은 방어 및 지역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파스쿠치의 아리에테 전차사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람 엘 할파(Alam el Halfa)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후 독일군은 몽고메리의 공세가 곧 있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루이지 파스쿠치 중위의 실제 사진

 

대공세의 장엄한 막

 몽고메리 장군 역시 독일, 이탈리아군에게 통타를 가하자면 엘 알라메인에서 치고 나가는 방법이 가장 유효할 것으로 보았다. 신중함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힌 그답게 몽고메리 장군은 수개월에 걸쳐 전차, 장비, 물자를 치밀하게 준비한 후 비로소 확신이 선 10월 24일, 1단계 '라이트풋'과 2단계 '슈퍼챠지'작전으로 엘 알라메인 전면에 걸친 공세에 나섰다.

1단계인 '라이트풋' 작전은 전선 한가운데 놓인 독일, 이탈리아 추축군의 지뢰지대를 좌우로 우회, 방어망을 뚫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오른쪽의 미테이랴(Miteirya) 언덕으로의 돌파는 성공하지만, 왼쪽의 돌파는 독일 람케 공수여단과 이탈리아 폴고레 공수사단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지지부진해서 한때 위기를 맞기도 한다.
2단계인 '슈퍼챠지' 작전은 독, 이 추축군을 엄폐물이 없는 사막 지형으로 밀어내 전차 세력을 소탕한다는 것이 목적으로 11월 2일부터 개시된다.이 작전은 독, 이 추축군 전차 부대의 소모를 가속해 결국 롬멜은 몽고메리의 의도대로 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파스쿠치가 탄 것과 동형의 피아트 M13/40 전차. 사막 위장이 된 상태.

 영국군은 독, 이 추축군에 비해 전차, 비행기, 화포, 병력등 모든 면에서 2배 가까운 우세를 점하고 있었고, 포격과 항공기 폭격으로 독일, 이탈리아군의 거점을 하나씩 맹 타격한 후 전차와 보병으로 밀고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물자의 우위를 전술의 우위로 훌륭히 바꿔놓은 방법으로 역시 독일, 이탈리아군도 늘어가는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거점을 버리고 물러서는 양상이 시작된다. 파스쿠치의 이탈리아 아리에테 전차사단과 독일 제21 전차사단은 영국군의 공세 첫날부터 영국 제7 기갑사단을 맞아 격렬한 전투에 돌입, 양측 모두 그 자리에서 한 치도 못 나가고 포격전을 벌인다. 급히 독일에서 돌아와 며칠에 걸쳐 방어하면서 롬멜은 보급선이 공격받는데다 물자가 부족한 독일, 이탈리아군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판단했고, 11월 2일에 병력 및 방어선 재정비를 위해 70km 정도 떨어진 푸카(Fuka)로의 전술적 후퇴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11월 3일에 히틀러 총통은 "독일, 이탈리아군 부하들에게 승리 아니면 죽음의 길밖에 없음을 알리라"는 회신으로 거부 의사를 대신한다.

  이제 이 명령을 받아 든 독일, 이탈리아군에게는 싸우다 사그라지는 운명만 남았을 뿐이다.

 

더는 물러설 곳은 없다

 11월 2일부터 영국군이 본격적인 돌파 작전으로 나오자 독, 이 추축군의 전선은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11월 4일, 영국 제1, 제7 기갑사단은 다른 독일군을 격멸하러 기동하던 중에 독일 제21 전차사단, 이탈리아 아리에테 전차사단과 부딪쳐 달아오른 사막 위에서 격전에 돌입한다.영국 제7 기갑사단이 이탈리아 아리에테 전차사단을 상대하게 되는데 아리에테 전차사단의 전차병들은 비록 성능이 떨어지는 전차였지만 물러서지 않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이때 파스쿠치와 그의 전차 중대는 영국 제22 기갑여단을 엘 알라메인 서쪽의 비르 엘 압드(Bir El Abd)에서 맞닥뜨려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벌어진 전차전은 파스쿠치의 중대에겐 불리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로마 레기온의 후예답게 서슴지 않고 전차의 가속페달을 밟아 기동하며 포격전을 벌였다.

파스쿠치는 선두에서 영국 전차의 궤도를 끊고 엔진실을 쏘며 분투를 벌였고 다른 전차였다면 이미 몇 대의 전차를 격파했을 터지만, 타고 있는 전차가 M13/40인 탓에 완전히 치명타를 가해 격파한 전차는 없어 보인다. 상대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전차를 탔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국군의 포탄을 피해가며 악전고투한 끝에 이들은 영국 제22 기갑여단이 아리에테 전차사단을 우회하려던 것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주군에게 노획된 피아트 M13/40 전차는 식별 마크로 캥거루를 그린 후
호주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최후의 돌격

 다음날인 11월 5일, 그의 중대에 절체절명의 임무가 준다. 아리에테 전차사단 주력이 푸카로 철수하는 동안 왼쪽 측면으로 적이 우회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임무가 준 것이다. 이미 영국군의 공세는 막바지를 향해 착실히 거대한 스팀롤러같이 굴러가고 있었고, 파스쿠치의 중대가 그것을 막아서려는 것은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와 그의 부하들은 아군의 무사 철수를 위해 어쩌면 살아 돌아갈 수 없는 임무를 받아 들었고, 이미 그의 앞에는 영국 제8 기갑여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미 수적으로도 압도되고 전차의 성능에서도 밀렸지만, 파스쿠치는 사막의 바위 지형을 이용해(엘 알라메인 근처에는 전차 기동이 힘든 와디나 잔 바위 지대가 많다.) 매복한 채 영국 전차부대의 접근을 기다렸다. 점점 다가온 영국군의 M3 Stuart(미국 3단계 경전차)나 Crusader, M3 Grant 전차가 그들의 전차포 유효 사정거리에 들어오고 있었다.

 영국 전차들의 의도는 우회 기동으로 아리에테 전차사단의 퇴로를 끊는 것임이 뻔했고, 파스쿠치의 전차중대만이 그 사이에 놓인 방어벽일 뿐이었다. 전차가 녹아버릴 듯한 사막의 아지랑이에 표적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다가오자 파스쿠치는 크게 외쳤다. 

"발사!"

 M13/40 전차들의 47mm 전차포들이 불을 뿜으며 토해낸 AP탄(대전차 철갑탄)들이 영국 전차에 꽂히며 크게 파열음을 올렸다. 그러나 포연이 가시자 M3 Stuart 같은 경전차에나 피해가 좀 갔을 뿐, 중형 전차들은 생채기만 좀 난 채 포탄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포탑을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각 차량 임의 사격!"

 파스쿠치의 명령에 중대의 M13/40들이 영국 전차 대열을 향해 포격을 어지러이 날리자 영국 전차들 역시 발화점을 확인해 응사를 개시했다. 양 측의 47mm, 2파운드, 37mm, 75mm 포탄이 교차할 때마다 전차의 장갑판에는 착탄 섬광이 번뜩였고 점점 전투의 열기는 달아 올라갔다. 엄폐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파스쿠치 중대의 피해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47mm 포를 쏴대는 그들에 비해 특히 영국군이 쏴대는 미국제 75mm AP탄은 착탄 즉시 전투 불능이나 격파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악착같이 조준을 해가며 쉴새 없이 포를 쏴대는 파스쿠치 중대의 저항은 최소한 시간을 끄는 성과는 있었다.

 그들이 무전으로 사단 주력이 무사히 빠져나갔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들의 퇴로 역시 아리에테 사단을 뒤쫓는 영국군에 의해 차단된 후였다. 이미 주어진 임무는 훌륭히 완수한 셈이었기에 여기서 항복을 해도 그들의 명예는 지킬 수 있었다.그러나 이탈리아인의 투지가 그를 그렇게 호락호락 항복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갑자기 사막에 회오리쳐 오르는 뿌연 모래먼지를 보고 영국 전차병들이 가진 의아함은 그 실체를 알자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저항하던 이탈리아군의 남은 전차 전부, 바로 11대의 M13/40 전차들이 매복 위치에서 뛰쳐나와 파스쿠치의 전차를 선두로 전속력으로 영국 제8 기갑여단 한가운데의 지휘부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영국군의 포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포를 쏴대며 파스쿠치 중대원들은 전차병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달리던 M13/40 전차들이 차례로 영국군의 포탄을 맞아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포탑이 날아가도 남은 전차들은 적탄에 맞는 순간까지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장렬한 최후의 돌격에서 살아남은 파스쿠치 중대의 전차는 없었으며, 루이지 파스쿠치 중위는 불타고 있는 그의 전차 옆에서 쓰러진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군은 파스쿠치 중위의 감투 정신을 높이 사 사후 전투 용맹장 금장(MOVM)을 수여한다.

 

영국군의 M3 그랜트 전차. 37mm, 75mm 포를 장착한 이 미국제 전차는 사막의 독,
이 추축군에게 큰 위협이 됐다.
특히 차체의 75mm 포는 Tiger를 제외한 북아프리카의 모든 추축군 전차를
일격에 격파할 수 있었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의 파스쿠치 훈장


[파스쿠치 훈장]

아군의 철수를 지원하고 장렬하게 산화한 파스쿠치 중위의 전공을 상징하는 파스쿠치 훈장을 받자면 상대편의 자주포 3대를 한 게임 내에 격파해야 한다.

말은 간단한데 이걸 해내자면 상대편의 후방으로 우회해야 해서 나름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을까?


 게임 내에서는 특무 훈장으로 분리되어있다.


역시 게임 내에서 파스쿠치 훈장을 받는 왕도는 우회 기동과 기습이다. 적의 자주포란 대개 상대편의 최후방, 깃발 전이라면 깃발 근처나 스타트 위치 주변에 매복하고 포탄을 쏴대는 게 정석. 여기에는 자주포들이 대체로 속도나 선회 성이 좋지 않은데도 그 원인이 있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 전차들의 매복 선을 뚫거나 우회해서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전세가 아군에게 기울어 다 함께 자주포가 있는 최후방까지 밀고 들어가는 경우도 생기지만 이 경우엔 아군 전차와 같이 돌진하기 때문에 혼자서 자주포 3대를 잡을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 게 문제. 필자도 경전차, 중형전차, 중전차, 구축전차 등으로 골고루 받아 본 적이 있는 훈장으로 역시 받았을 때를 살펴보면 상대 진영 외곽으로 크게 우회해 자주포 진지를 습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견 용감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만큼 상대가 아군과 싸우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순간을 잘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적의 자주포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해도 멋대로 달려들다간 미리 여러분의 접근을 확인하고 기다리던 적 자주포의 직사에 한 방 폭살을 당하거나 한 대를 잡더라도 다른 자주포의 직사에 박살이 날 가능성이 높다. 반드시 돌입 전에 자주포의 포구 방향을 확인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으며, 기회다 싶으면 서슴없이 결단을 내리시기 바란다.

그럼 오늘도 다 같이 전장을 달려보자.

 

플래툰(Platoon) 이준규 기자

※ 위의 내용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글로,
워게이밍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 군사/역사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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