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타르차이

에르빈 타르차이(Ervin Tarczay)

판터 랍소디


우리나라에선 헝가리하면 브람스의 헝가리안 랍소디 정도만이 떠오를 정도로 그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닌 나라다. 

그러나 동유럽의 이 작은 나라는 제2차 대전 당시 추축국의 일원으로 독일군 편에 가담해 포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바 있으며, 그 당시 이미 자국제 전차를 만들 정도의 의지와 기술력을 가진 나라이기도 했다.

훈장 이름의 유래

군인의 길

1919년에 헝가리 페크스(Pécs)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타르차이는 일찌감치 인생의 길을 군인으로써 걷기로 결심한다.

 독일의 서방 전격전에 이어 소련에 대한 침공으로 전 유럽이 전화에 휩싸이던 1941년 8월에 루도비카 사관학교(Ludovica)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제23 전선 경비대대(국경 수비대)에 소속되어 장교 생활을 시작한다. 그때 헝가리군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3국 동맹을 지칭)의 일원으로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는데 동참해 대평원의 전투에 뛰어든 참이었다.

 새로이 펼쳐진 기동전의 전장 앞에서 헝가리군도 기갑부대를 확충하게 되고, 타르차이 역시 전차라는 멋진 전투기계의 매력에 빠져 1942년 여름부터 전차병 재교육을 받고 1943년 초에 드디어 헝가리 왕립 제3 전차연대에 착임하게 된다.

역전의 용사


헝가리군의 40M. Turan Ⅰ 전차.
포탑이나 세부 형태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스코다사의 LT vz. 35, LT vz. 38
(독일군 명칭 38(t) 경전차) 전차 설계가 베이스임을 알 수 있다.

 

 대전중의 헝가리군은 소국임에도 불구하고 Toldi, Turan 같은 자국제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Turan같은 전차는 기본 베이스는 체코슬로바키아 스코다사의 기술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헝가리는 이를 자군의 요구에 맞춰 개량, 러시아의 대평원에 풀어 놓았다.

 40M. TuranⅠ같은 경우 스코다사제 40mm 주포를 장착했는데 이는 이미 76mm 급의 주포를 가진 T-34(소련 5단계 중형전차)같은 소련군 전차에겐 공격력에서 상대가 안될 뿐더러 경사 장갑은 Turan의 포탄을 튕길 뿐이었다. 성능의 한계를 절감한 헝가리군은 곧 주포를 단포신 75mm로 강화한 41M. Turan Ⅱ를 내놓게 된다.

 1944년 초에 중위로 진급한 타르차이 역시 41M. Turan Ⅱ를 장비한 왕립 제2 전차단 제3 전차연대 제2대대 소속으로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솔로트비나(Solotwina)에서 콜로미아(Kolomea) 지역에 걸쳐 공세를 시작한 독일, 헝가리 추축군은 초반에 목표 점령에 성공하는 듯이 보였지만, 재빨리 반격에 나선 소련군에 의해 난관에 빠지게 된다. 땅을 파 전차를 숨기고 포탑만 내민 채 포를 쏘는 소련군의 매복에 공격은 지지부진, 타르차이의 부대도 손해만 늘어갔다.

 이미 이 시기에는 헝가리군 41M. TuranⅡ 전차의 성능적인 한계가 드러난 상황으로 단포신 75mm 주포로는 소련군의 T-34-85, IS 같은 전차들에게 큰 손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절망적이기까지 한 성능적, 수적인 열세를 잘 알면서도 타르차이와 그의 부대원들은 40M. Turan Ⅰ, 41M. Turan Ⅱ, 38M. Toldi를 타고 놀라운 용기를 발휘하여 우세한 성능의 소련 전차에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친다.

 비록 4월 말이 되자 공세는 실패하고 헝가리군은 40여대의 전차와 차량을 잃었지만, 독일군과 협력해 50여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는 전과를 남겼다. 우크라이나 북부 방면군 사령관인 독일군의 발터 모델 원수는 보잘 것 없는 전차로 벌인 헝가리군의 분투에 큰 감명을 받고 이들이 좋은 전차만 있었다면 더 큰 전과를 올렸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그가 5월 초에 헝가리 제2 전차사단에 독일제 전차를 지급하라고 지시하는 결과까지 이끌어 냈기 때문에 타르차이와 헝가리 전차부대가 보여준 불굴의 감투정신은 보상을 받게 된다.

헝가리군의 41M. Turan Ⅱ 전차. 무장을 단포신 75mm 포로 강화했지만, 적군인 소련 전차가 85mm, 122mm 급의 주포를 장착하는 상황 아래선 역부족의 성능을 갖고 있었다.

호랑이, 표범을 받다

모델 원수의 지시로 돌아온 선물은 대단했다. 헝가리 왕립 제2 전차사단에 보급된 독일 전차들은 Pz.Kpfw.Ⅳ H형(독일 5단계 중형전차) 12대, StuG Ⅲ(독일 5단계 구축전차) 10대, 거기다가 Tiger 중전차(독일 7단계 중전차) 10대였다. 특히 Tiger 중전차는 그 위력이 무지막지함은 물론, 생산에 시간이 걸리고 단가가 상당히 비싸서 독일군조차도 어떻게든 부서진 것을 재생해 고쳐 써가며 애지중지하는 보물이었다.

그래서 독일이 동맹국에 원조한 사례가 극히 드문데, 그런 물건을 헝가리군에 10대나 넘겨줬다는 것은 독일군이 그들의 용맹함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5월에 이 신무기를 받아 든 타르차이와 헝가리 전차병들은 야전 훈련에 돌입, 7월엔 실전 투입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물총같은 단포신 주포만 쏘다가 장포신의 75mm, 88mm 주포를 쏘게 된 헝가리 전차병들은 물을 만난 고기와도 같았다.  대대는 7월 중순에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소련군 전차, 차량 수대와 대전차 포들을 격파, 모델 원수의 신뢰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폴란드 산도미에르츠(Sandomierz) 방면을 향한 소련군의 7월 공세를 피한 타르차이와 대대는 이번엔 독일군으로부터 Panther A형(독일 7단계 중형전차)을 수령하게 된다. 장포신 75mm KwK 42 주포를 장착한 Panther를 받은 타르차이는 Panther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전투에 임한다.

 1944년 9월, 타르차이와 그의 부대는 추축국을 탈퇴해 연합군 편이 된 루마니아로부터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를 지키기 위해 이동하면서 전설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헝가리군의 Tiger 중전차와 전차병들. 서 있는 검은 전차복 차림의 
독일 전차병으로부터 조작법을 교육받는 중이다. 
헝가리군의 Tiger 사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희귀하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토르다의 방어 거점을 지키기 위한 상대방의 포격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을 가리는 포연에도 굴하지 않고 헝가리군 Panther 중대는 루마니아군의 방어 거점을 향해 주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며 속도를 올려 질주했다.  9월 15일, 타르차이와 그의 중대는 루마니아의 토르다(Torda) 동부 지역으로 진격중에 있었다. 10여일 전부터 이 방면을 향한 공세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려 하고 있다. 전진하다 보니 타르차이의 중대는 본대로부터 떨어져 분단된 상황이었지만, Panther A형의 큐폴라(전차장이 앉는 작은 전망탑)에 앉은 타르차이는 그대로 적의 방어 거점을 향했다. 보병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Panther 전차 중대만의 기동으론 위험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적 진지 전방에 대전차 포!"

 엄폐한 대전차 포를 향해 전차가 돌진한다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 그러나 타르차이와 그의 부하들은 대전차 포 진지를 전차포로 풍비박산 내며 방어 거점으로 달려 들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드는 Panther의 위용 앞에 루마니아군 방어 병력은 그대로 무너져 허둥대기 시작했고, 타르차이의 Panther 중대는 마음껏 이들을 유린했다. 결과적으로 이 날 2개 중대의 루마니아군과 3문의 대전차 포가 격파되었고, 토르다의 거점은 헝가리군 손에 들어왔다.

 다음 날이 되자 이 지역은 역시 소련군에게도 중요했기에 바로 반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대가 독일군도 아닌 헝가리군이라는 것을 알고 깔본 것인지 무작정 대량의 전차로 수적 우위를 앞세워 달려드는 소련군. 타르차이는 그의 Panther 중대를 이끌고 파도같이 넘실대며 몰려오는 소련군 전차 대열의 측면으로 우회해 절호의 사격 위치를 잡았다.

 타르차이와 휘하 Panther A형들은 측면을 노출한 소련군 전차 대열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고, 앞과 옆에서 공격을 받은 소련군 전차대는 즉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시범을 보이듯이 소련군 T-34 전차의 포탑을 높이 날려 버리는 타르차이. 먼저 한 대를 격파한 그는 오후 내내 전투를 벌여 2대의 적 전차를 격파했다. 타르차이와 부하들의 활약으로 전차의 피해가 늘어가자 소련군은 그 날의 반격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흩날리는 먼지와 자욱한 연기 속에서 황황히 철수해 갔다.

 타르차이는 9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 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Panther를 타고 11대의 적 전차를 격파하는 활약을 펼쳤다. 그의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추축군의 전세는 기울어만 가서 헝가리 왕립 제2 전차사단은 루마니아령을 흐르는 티사(Tisza)강까지 후퇴하게 된다.

 여전히 질 마음이 전혀 없던 타르차이는 1944년 10월 25일엔 중대를 이끌고 헝가리 동부 폴가(Polgár) 지역의 소련군 대전차 포 진지를 습격했다. 대전차 포란 전차가 멀리 있으면 전차 잡는 사냥꾼이 되지만, 전차가 근거리로 달려들면 속수무책에 빠진다. 가까이에서 기동하는 전차를 상대로 휙휙 포를 돌리기도 어렵고 넋 놓고 조준하다가는 전차에 깔려 버리기 십상이다(실제로 타르차이는 Panther A형으로 소련군 대전차 포를 깔아뭉개 격파한 예가 있다). 이를 잘 아는 타르차이의 Panther와 그의 부하들이 포 진지로 달려 들어와 포를 쏴대자 순식간에 3문의 소련군 대전차 포가 박살이 나버렸고 소련군 포병들은 혼비백산 사방으로 튀어 달아나 버렸다(다른 3문은 사용가능 상태로 노획).

 그럴 때 측면으로 도는 그림자. 타르차이는 2대의 소련군 T-34 전차가 대전차 포 진지를 방어하려 우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타르차이는 즉시 매복 위치를 잡고 T-34의 차체가 드러나길 기다렸다. 놀랍게도 이렇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타르차이는 전차장 큐폴라의 해치를 열고 몸을 드러낸 상태였다. 10월 초부터 그는 적을 1초라도 더 빨리 발견하기 위해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차장 해치를 연 채 몸을 노출하고 전장을 관찰했다. 그가 T-34의 우회를 알아챈 것도 이런 노력의 덕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점점 다가오며 커져가는 T-34 전차. 그 전차들을 질세라 똑바로 바라보던 타르차이가 외쳤다.

 "지금이다! 발사!"

 75mm KwK 42 주포가 불을 뿜자 사방으로 비산하는 먼지.

 근거리에서 Panther A형의 주포에 직격당한 선두 T-34는 그대로 주저 앉으며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고, 타르차이의 위치를 제대로 모른 다음 T-34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그는 이렇게 남은 전투 기간에 5대의 전차를 추가로 격파, Panther로만 적 전차 16대 격파의 전과를 올렸다.

헝가리군의 Panther 전차. 타르차이도 이것과 같은 전차를 타고 활약을 펼쳤을 것이다.

 1945년 1월엔 무공을 인정받아 대위로 진급하며 3월엔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나 화급한 전세 때문에 신혼여행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곧 전선으로 돌아와야 했고, 이번엔 악화된 전세로 인해 가동상태인 전차마저 줄어서 Panther가 아닌 Pz.Kpfw.Ⅳ 를 타게 된다. 3월 17일, 소련군에 거의 포위된 헝가리의 쇠레드(Söréd) 마을을 방어하러 독일군 전차대와 함께 Pz.Kpfw.Ⅳ 소대를 이끌고 진입한 타르차이.

 중과부적에다 포탄까지 부족하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타르차이와 부하들은 소련군 전차대의 진격을 격퇴하고 차량과 화포 등을 격파하며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고군분투 끝에 그의 소대는 와해되었고 무운이 다한 것인지 타르차이의 전차도 파괴되어 도보로 탈출하던 그와 그의 부하들의 생사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탈출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을 수 없는 투지를 보여준 헝가리의 용사는 그렇게 전장의 전설이 되었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의 타르차이 훈장


[타르차이 훈장]

 훈장의 이름이 된 에르빈 타르차이가 꽤나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 인물이어서인지
타르차이 훈장은 상당히 받기 어려운 것 중 하나다.
 5군데 부품에 치명적 손상을 입고 전차 내구도의 80% 이상의 피해를 입은 상태로 최소 5대의 적을 격파해야 하며 전투는 승리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건이 꽤 까다로운 편이라 하겠다.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을까?

  일단 위의 훈장 수요 조건만 봐도 후덜덜해 오는 게 사실. 내구도의 80% 이상을 깎이고 5군데 부품에 치명적 손상만해도 이건 대개 화재가 났다가 소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적 전차는 최소 5대를 격파해야 하고 전투는 이기고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은 겪어본 적이 있지만 게임을 졌기 때문에 이걸 실제로 받아본 적은 없다.

 그럼 이 쯤에서 타르차이 훈장을 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역시 조건들을 조목조목 다시 보자면 결론은 하나에 도달한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란 것이다.


 타르차이 훈장 설명. 
월드 오브 탱크 플레이어로서는 받고는 싶지만 쉽게 손에 넣기 힘든 고난이도 훈장 중 하나다.

 

 대개 '월드 오브 탱크'를 플레이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이 판을 던져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상대 팀 전차를 4대까진 잡았는데, 교전을 하면서 두들겨 맞고 자주포한테도 한 방 맞아서 불까지 났다 치자. HP는 20% 남았고 장비 5개는 고장 났으며, 전차가 이렇게 만신창이인데 전차병이라고 무사할까?

 조종수와 전차장은 이미 드러 누웠고 수리 키트와 구급낭, 소화기는 전부 써 버린 상태다. 이런데도 전세는 아군에 유리하진 않고 막상막하인 상황이다. 그러면 슬슬 '아, 그냥 죽고 다음 판 갈까...' 하는, 게임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럴 땐 어떡해야 할까? 그렇다, 당신이 타르차이 훈장을 받을만한 실력이란 것을 인정받고 싶다면, 전차를 슬슬 엄폐물로 모는 게 아니라 그래도 적을 향해야 한다. 불에 탄 엔진은 그르렁거리고 한방 맞은 포탑은 느릿느릿 돌아도 남은 한 대를 더 잡고 게임을 승리하는 것만이 타르차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다 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매번 노력하다 보면 외면만 하던 행운의 여신이 웃어주는 순간이 있다. 어려운 훈장에는 운도 따라야 하는 법. 시도하는 자에게 기회가 있듯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오늘도 전장을 달려보자.

 그럼 어딘가의 지도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다.

 

플래툰(Platoon) 이준규 기자

※ 위의 내용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글로,
워게이밍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 군사/역사에 대한 글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