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에드문트 오를릭

용기의 증명

훈장 이름의 유래- 로만 에드문트 오를릭

전차를 타고 상대의 전차를 여러 대 격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그 전차가 지금의 경승용차보다 더 작은 크기의 콩알 전차(Tankette)라면? 한 용감한 폴란드인 청년이 그런 기적 같은 전투를 몸소 실천해 보였다.

로만 에드문트 오를릭(오른쪽의 앉은 인물)과 그의 TKS(Tankette).
이 작은 콩알 전차로 그는 믿을수 없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그는 누구인가?

폴란드인인 로만 에드문트 오를릭은 건축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대학에서 건축학을 배우던 오를릭이 살고 있던 1930년대 말이라는 시대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오를릭은 기갑 부대의 예비 사관후보생으로서 기갑병과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많은 폴란드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대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유럽을 군사력으로 위협해 야금야금 집어먹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폴란드는 말로 해서는 호락호락 나라를 넘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히틀러는 기만 작전으로 개전 책임을 폴란드에 돌릴 구실까지 만든 후 1939년 9월 1일,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한다.

오를릭이 탄 TKS(Tankette)와 동형의 차량. 오른쪽에 길게 20mm 기관포의 포신이 나와 있다.
하지만 포탑이 없어서 구축전차와 같은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전장으로

조국이 처한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오를릭은 즉시 기갑부대의 준사관으로써 소집되어 TKS (Tankette - 콩알 전차)의 지휘관이 된다. 그래 봤자 조종수, 전차장으로 이루어진 2인승 소형 전차인 TKS에서 전차장은 지휘 및 사주 경계, 무기의 조작을 맡기 때문에 상당히 바쁜 보직이다. 당시 폴란드군의 TKS에는 2종류가 있었는데, 7.92mm 기관총이 달린 보병 지원용과 20mm 기관포가 달린 대차량/대전차용이 그것이었다. 오를릭은 20mm 기관포가 장착된 대전차용의 지휘관이 되었고, 전쟁이 발발한 지 2주 정도 지난 1939년 9월 14일, 폴란드군 비엘코폴스까 기병여단의 브로초프(Brochów)에서의 공세를 지원하게 된다. 바로 여기서 독일 제4전차사단 제36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3대를 격파한 것이 그의 명성의 시작이었다.

 

■ 뜨거워지는 전세

수일 후인 9월 18일에 일어난 전투는 좀 더 극적인데, 오를릭과 다른 2대의 TKS는 폴란드의 거대한 삼림지대인 푸스짜 캄피노스까(Puszcza Kampinoska) 지역에서 정찰 임무를 부여 받고 기동 중이었다. 오를릭이 탄 TKS의 무장은 20mm 기관포. 제2차 대전 초기에는 독일 전차의 장갑도 그다지 두꺼운 편은 아니었지만, 독일군의 2호 전차에 달린 20mm 기관포나 3호 전차의 37mm 주포라면 이런 초라한 콩알 전차 따위 한 방에 풍비박산이 날 터였다. 10~4mm 정도에 불과한 TKS의 장갑으로는 직격은 커녕 3호, 4호 전차 같은 것이 깔아 뭉개려고 달려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두 TKS는 보병이나 상대할 수 있는 7.92mm 기관총을 장착한 것이어서 전차를 만날 경우 미끼가 되어 주거나 부서져 장애물이 되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될 방법이 없었다.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전방을 살펴보던 오를릭의 귀에 반갑지 않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무한궤도가 덜커덕거리며 잡목을 쓰러뜨리는 소리. 게다가 엔진 음이나 접근하는 방향을 보면 분명히 독일군 전차였다. 그는 다른 두 대의 TKS에게 나무 뒤로 숨을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20mm 기관포를 겨누고 기다렸다. 드디어 오를릭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독일군의 체코제 Pz. Kpfw. 38(t) 전차(‘월드 오브 탱크’내에서는 독일군 3단계 경전차로 등장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합병한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스코다 LT vz. 38 전차의 우수한 성능에 주목, 이를 약간의 개량만 해서 Pz. Kpfw. 38(t)로 개명, 자군용으로 잘 써먹고 있었다(참고로 Pz. Kpfw. 38(t)의 (t)는 톤수가 아니라 ‘체코제’ 노획 차량이라는 걸 나타내는 독일군 용어로 국가명의 약자임). 

여기에 장착된 스코다 37mm A7 주포(독일군 명칭 37mm KwK Pz. Kpfw. 38(t) L/47.8)라면 TKS에 맞을 경우 앞 뒤로 뚫고 나갈지도 모를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경전차인 Pz. Kpfw. 38(t) 역시 장갑이 50~8mm에 불과, 장갑이 얇은 부분을 겨눈다면 오를릭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독일군의 Pz. Kpfw. 38(t). 체코슬로바키아제 스코다 LT vz. 38 전차를 독일군이 제식화한 것이다. 당시로써는 고성능으로 유럽 전격전에서 독소전 초기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프랑스 전격전에선 롬멜 장군이 지휘한 제7 전차사단(일명 ‘유령사단’)에서 주력 전차 급으로 사용된바 있다.

접근해 오는 독일 전차가 매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완벽히 엄폐된 위치에서 20mm 기관포의 방아쇠를 당긴다.
길게 꼬리를 끌며 점사로 발사된 20mm 탄은 선두의 Pz. Kpfw. 38(t) 전차에 탄착해 작렬했고, 몇 발을 더 맞자 치명타가 됐는지 독일 전차병들은 곧 해치를 열고 튀어나와 숲 속으로 도주했다(전차가 행동 불능에 빠졌을 수도 있지만, 계속 관통해오는 20mm 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차를 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다른 Pz. Kpfw. 38(t) 전차는 앞에 돈좌한 아군 전차에 의해 시계가 가렸는지 무작정 앞으로 튀어 나왔지만 문제는 이들 역시 오를릭이 어디서 사격을 가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결국 두 번째 Pz. Kpfw. 38(t) 전차 역시 멀리 가지도 못하고 숲 속에서 날아온 20mm 기관포탄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주저앉게 된다. 뒤를 따르던 세 번째 Pz. Kpfw. 38(t) 전차 역시 사정이 나을 것은 없었다. 어디서 자신들을 겨누고 치명타가 날아 올지 모른 채 앞으로 전진하며 여기저기 오를릭의 전차가 있을만한 곳에다 포격을 가해볼 뿐이다.

그러나 소경 코끼리 만지듯 포를 쏴대는 Pz. Kpfw. 38(t) 전차를 향해 오를릭이 정확히 조준한 점사를 가하자 이 전차 역시 그 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오를릭은 이렇게 3대의 독일군 전차를 격파한 것은 물론 독일 전차병 2명을 포로로 생포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 전투에서 독일의 ‘왕자님’도 전사했다는 것이다. 이 날 이 지역의 전투가 끝난 후 독일군 소대장 차량인 불타던 4호 전차 B형(그냥 Pz. Kpfw. 38(t) 전차였다는 설도 있다)에서 심하게 부상을 입은 한 독일 전차 장교가 꺼내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곧 사망한 그의 이름은 빅토르 4세 알브레히트 폰 라티보르 소위로 오를릭이 격파한 전차들의 소대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티보르 소위는 독일의 외팅겐 제후인 빅토르 3세 아우구스트와 엘리자베스 외팅겐/외팅겐 슈필베르크의 장남으로 왕자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입대한 군대가 나치스 독일군이었다는 점은 따져봐야겠지만, 어쨌든 나라에서 군인을 원할 때 왕족의 신분임에도 장교가 되어 전차를 타고 최전선에서 싸웠다는 것은 유럽의 솔선수범 사상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 전설을 써내려 가다.

정규 전차도 아닌 TKS로 지금까지 세운 전과도 놀라운 것이지만, 다음날인 9월 19일, 오를릭은 진정 전설이 되는 활약을 벌이게 된다. 그는 이 날 다른 TKS 2대와 함께 비엘코폴스까 기병여단의 독일군이 점령한 시에라코프 마을로의 공격 지원에 나선다. 이 마을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나름 중요시된 곳으로 비엘코폴스까 기병여단은 단시간의 전투 후 독일군을 몰아내고 마을을 점령했다. 그러나 목표가 목표인 만큼 독일군이 반격해 오리라는 것은 명약관화였고, 다음날 새벽 공기를 울리는 독일군 Pz. Kpfw. 38(t) 전차의 궤도음과 함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독일군 제65 전차대대, 제11 전차연대 제1대대의 Pz. Kpfw. 38(t) 전차들이 포격 지원을 받으며 시에라코프 마을을 재탈환하려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공격 명령을 받은 오를릭은 진격해 오는 수십대의 적 전차대 앞에 3대의 TKS로 매복에 나선다. 중과부적이 뻔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명령 같아 보였지만, 미약한 화력의 TKS로 대들어야 할 정도로 폴란드군은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유명한 전투임에도 개전 초기의 혼란 상화이어서 그런지 이 전투의 상세 상황은 기록으로 남아있질 않다. 전후 오를릭 본인의 기록이라도 있었을 법 한데, 의외로 서적들도 이 전투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있는 지도나 문헌을 참고로 이 전투를 재구성 하자면, 오를릭과 그의 TKS들은 일단 전투 초반부에 마을 외곽에 매복진을 펴고 있었다.
그 위치는 마을로 진입하는 독일 전차들의 왼쪽 측면을 보며 관측할 수 있는 위치로, 오를릭은 독일군 Pz. Kpfw. 38(t) 전차들이 마을로 진입하려 하자 매복 장소에서 튀어 나와 왼쪽 측면을 강타하며 기습에 나선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했는지 순식간에 3대의 Pz. Kpfw. 38(t) 전차들이 측면 사격을 받고 격파되었고, 일단 뒤로 빠졌던 오를릭은 잠시 후 자신들의 정면을 향해 다가오는 4대째의 Pz. Kpfw. 38(t) 전차를 다시 격파한다. 그러자 독일군 전차들은 이번에는 마을로 진입하지 않고 오를릭과 동료 TKS 전차들의 우측으로 우회 접근하는데, 이에 오를릭은 독일군 전차의 우측 면을 노리고 기동한다. 측면을 드러낸 5대, 6대째 Pz. Kpfw. 38(t) 전차가 곧 20mm 기관포탄을 맞고 차례로 불타오르고 7대째의 Pz. Kpfw. 38(t) 전차는 포탑을 돌려 격렬히 저항했으나 곧 격파되었다. 포탑이 없어 ‘바퀴벌레’라는 별명의 보잘것없는 TKS를 타고 오를릭은 며칠 사이에 독일 전차 13대를 격파한 것이었다.

이렇게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폴란드는 독일에 항복했고, 그래도 전의를 꺾지 않은 오를릭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나치스 독일이 패망하는 순간까지 싸웠으며 살아서 그 날의 영광을 맞이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토록 원하던 건축가가 되어 잿더미 속의 폴란드가 다시 일어서는데 일익을 담당하지만, 안타깝게도 1982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가 탄 TKS란?

제1차 대전이 낳은 지상전의 총아인 ‘Tank’(전차). 전후 이 전차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데, 그 중에 한 카테고리가 Tankette(탱캣: 콩알 전차)이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차란 ‘보병을 지원하며 참호선을 돌파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에 굳이 이런 임무에 여럿이 타는 대형 전차가 필요한가? 작고 저렴하며 간단한 전차가 운용에 더 편리하지 않을까? 라는 명제가 대두됐다. 이런 인식을 현실화 한 것이 영국군의 지파드 마텔 소령이 만든 1인승 전차(사실 제1차 대전 중에도 1-2인승 소형 전차들이 구상되기도 했으나 대량 생산되지는 않는다)였고 이것을 개량해 양산화 한 것이 영국제 빅커즈-카덴로이드 탱캣이었다. 무게 1.5톤(소형 승용차보다 약간 더 무거운 정도다), 기관총 1정에 승무원 2명이 타는 빅커즈-카덴로이드 탱캣은 즉시 ‘대용 전차’로써 전 세계 군대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장갑은 9-6mm에 불과하지만, 일단 소총탄 정도는 막아내며 보병과 함께 전선 돌파는 가능하기에 여러 나라 군대에서 빅커즈-카덴로이드 탱캣을 사거나 아니면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유사한 물건을 찍어 내기 시작했고 폴란드도 그 중 하나였다.

1931년부터 TK-3라는 명칭의 콩알 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폴란드가 이를 개량해 엔진을 강화하고 장갑을 약간 두껍게 한 것이 TKS였다.
TKS는 길이 2.58m, 높이 1.32m(웬만한 경승용차보다 작다!)에 무게 2.6톤, 10-4mm 두께의 장갑에 46마력 엔진을 장착, 시속 40km 정도를 냈다.
원래 보병 지원이나 하며 참호선을 돌파하는 게 임무라 무장은 7.92mm km wz. 25 기관총(프랑스제 호치키스 M1914 기관총의 면허생산형)이 전부. 독일의 군사력 확장에 긴장한 폴란드군은 이 전차에 대전차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1939년에 Nkm wz. 38 FK 20mm 기관포를 장착한 버전을 만들지만, 독일의 침공 전까지 이렇게 만들어진 건 20여 대에 불과했다.

이런 콩알 전차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등 당시 유럽의 웬만한 군대들은 다 갖고 있었으며 많은 수가 제2차 대전에도 동원되었다. 콩알 전차의 원조로 여러 나라를 설레게 한(?) 영국은 ‘유니버설 캐리어’라는 콩알 전차의 직계 후손을 제2차 대전 기간 내내 잘 쓰는데, 이미 전차라기 보다는 경수송차의 용도였지만 영국군은 여기에 보이스 대전차총을 달아 대전차 용도로도 활용하려고 했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는 한술 더 떠서 여기다 2파운드 대전차 포를 장착한 본격(?) 대전차형도 만들지만, 실전에 쓰진 않았다. 바로 이 대전차 버전(Universal Carrier 2-Pdr)은 ’월드 오브 탱크’ 영국 구축전차(TD) 트리의 2단계로 등장한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의 오를릭 훈장

오를릭 훈장
[오를릭 훈장]

 원래 모델이 된 인물이 경전차 에이스인 만큼 ‘월드 오브 탱크’ 내에서도 이 훈장은 경전차로만 받을 수 있다.
 최소 3대를 격파하면 받게 되는데, 문제는 자신이 격파한 전차가 최소 2단계 이상 상위여야 한다는 것.TKS로 더 상급이라 할 수 있는 Pz. Kpfw. 38(t) 전차 13대를 격파한 그의 전적에 상당하자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럼 실제로 한번 타보자!

 그런데 이 훈장을 받는 게 생각보다 꽤 난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주포 3대를 잡으면 주는 파스쿠치 훈장(필자는 15번 받아봤다) 같은 것보다도 몇 배는 따기 힘들어 보이는 게 이 오를릭 훈장.

Type 2597 Chi-Ha

 

T71

Type 2597 Chi-Ha 경전차로 받은 경우. Type 2597 Chi-Ha 경전차는 주포의 위력이 좋은 편이라서 같은 단계 및 약간 상위 단계 방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T71 경전차로 받은 경우. T71은 제2차 대전 후에 등장한 전차답게 일부 대전 중 미군 전차의 90mm 주포와 거의 유사한 공격력을 갖고 있는데다 속도까지 빠르다. 그 덕에 잘만 활용하면 발 빠른 저격수같이 쓸 수 있다.

 

 

Type 2597 Chi-Ha T71
Type 2597 Chi-Ha T71

 

전차를 모는 실력 이전에 경전차로 이런 방을 잘 만나기가 어렵다는 점이 먼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3단계 경전차로 최소 5단계 전차가 있는 방을 들어간다 치자. 그렇다면 당신이 이 훈장을 받자면 5단계 전차를 최소 3대 잡는 방법 외에는 없다. 소대전으로 상위 단계 전차들과 같이 들어간 게 아닌 이상, 3단계 경전차가 들어온 방에 5단계 경전차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그렇다면 상대는 5단계 중형, 중전차나 구축전차(TD)가 되게 된다. 일반 자주포는 5탑방일 경우엔 대개 잘해야 3-4 단계가 있는 경우가 고작이라, 여기서 자주포를 서너 대 격파해 봐야 ‘2단계 이상 상급인 적 전차 격파’ 라는 이 훈장의 조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게다가 대상 자체에 자주포는 빠져 있는 듯 하다.

필자는 게임에서 이 훈장을 미군 경전차인 7단계 T71과 중국군(일본제 노획) 경전차인 3단계 Type 2597 Chi-Ha 전차로 2번 받아본 바,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일단 타고 있는 경전차 주포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 3단계 Type 2597 Chi-Ha같은 경우 장착한 47mm 주포의 관통력이 좋고 연사 속도가 빨라서 ‘3탑방의 판터’로 불리는 물건. 물론 그렇다고 해서 3단계 경전차로 5단계 중형 전차나 중전차의 정면을 파고 든다는 것은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3단계 경전차라면 탄종에 따라 5단계 전차의 사격 1-2발에 격파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철저히 측면, 그 중에서도 후면을 노리는 게 좋다.

필자의 경우에도 Type 2597 Chi-Ha를 타고 5단계 방에 갔을 때 이걸로 뭘 하나 싶어서(Type 2597 Chi-Ha는 경전차 카테고리지만 속도가 그리 빠르지도 않다) 뻘쭘했는데, 그렇다면 항상 고단계 방에서 쓰는 저단계 경전차의 왕도, ‘치고 빠지기 전술’을 쓰기로 했다.
우선 지형을 이용해 앞으로 나서지 않고 철저히 아군 전차와 기동하며 전황을 살피는 건 기본. 그러다 보면 혼전 양상으로 가면서 고립되거나 측면을 노출하는 상대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때 재빨리 적의 옆이나 뒤로 우회한다. 이때 필자가 잡은 5단계 전차들이 독일의 Pz.Kpfw. IV, 미국 T49, 영국 Churchill 전차로 Pz.Kpfw. IV 전차는 아군과 정면 교전 중인 것을 바위 뒤로 돌아 3-4연사 하여 격파, T49는 아군을 매복 사격하느라 측면을 노출한 것을 2연사로 격파, Churchill은 마지막에 바위에 숨어 저항하는 것을 Churchill의 부앙각이 아래를 쏘기 어려운 단점을 활용, 아래쪽 바위에 바짝 붙어 숨어서 측면 장갑판에 6-7발 이상 직격탄을 쏜 기억이 있다. 이 전차들은 아군과의 교전으로 내구도가 반정도 소모된 상태였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 예라 하겠다. 물론 경전차의 주포로는 2단계 이상 차이가 나는 상위 전차들과의 정면 대결은 어렵기 때문에 이런 기동-사격-엄폐가 오를릭 훈장을 받는 왕도라 하겠다.

 
T71 경전차 같은 경우는 장갑은 얇지만, 주포 관통력과 속도가 7단계 경전차중 최고라 해도 무리가 아닌 명품.
요동 포탑에 달린 6연발 카트리지로 속사가 가능하고 철갑탄 장거리 저격으로 9단계 구축전차 Object 704의 정면 장갑판을 몇 번이나 관통한 기억이 새로운데, 이런 물건은 잘만 굴리면 때로 굉장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그런 점 때문에 T71은 7-8탑방보다는 9-10탑방에 흔히 불려 간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역시 앞으로 나서지 말고 적절히 기동-엄폐를 반복하며 사격하는 게 최고다.

필자가 T71로 오를릭 훈장을 받을 때도 독일군 9단계 중전차 E-75, 미군 9단계 중형 전차 M-46 Patton, 독일군 10단계 중전차 E-100을 격파하고 받았던 듯하다.  이 전차들 역시 아군과 교전 중인 것을 우회해서 측면을 쐈는데, E-75는 엔진에 불이 나서 터졌고 M-46 Patton은 워낙 내구도가 간당거려서 한 두 발에 잡았던 것 같다.  E-100은 아군 깃발 쪽으로 전진하다가 아군과 교전했는지 내구도가 좀 소진돼 바위 뒤에 숨은 상태였는데, 필자가 T71로 오른쪽 옆인가를 쏘자 부아가 돋는지 필자를 잡겠다고 엄폐 위치에서 나온 게 실수였다. 헤비 전차의 포탑 회전 속도가 느린 걸 이용해 앞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며 한발 더 쏘자 곧 아군의 자주포탄(아마 8단계 자주포였을 것이다)이 직격, E-100을 거의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놨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 발 더 쏘아 격파하고 받은 오를릭 훈장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이외에도 경전차가 많은 프랑스 트리나 러시아 트리의 명 경전차 T-50 시리즈, 혹은 경전차이면서도 105mm 주포를 단 독일 트리의 ‘달리는 암살자’ VK 28.01로도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오를릭 훈장을 땄다는 에피소드를 심심치 않게 봐왔다.

역시 진귀한 훈장에는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 그러자면 많은 전투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은 전차장의 기본!  그러기에 오늘도 마우스를 쥐고 적 전차를 향해 돌진이다!

 

플래툰(Platoon) 이준규 기자

※ 위의 내용은 외부의 전문가가 작성한 글로,
워게이밍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 군사/역사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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