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노비 그레고리비치 콜로바노프(Zinoviy Grigorevich Kolobanov)

적들을 막아선 강철의 벽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서유럽의 전장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눈을 동부로 돌려 소련과의 밀월 관계를 청산하고 전격적으로 침공을 개시한다(작전명: '바르바로사').

 불시에 들이닥친 독일 공군기의 공습에 소련 공군기들은 미처 활주로를 이륙하지도 못한 채 첫날에만 수 백대 단위로 불쏘시개가 되어갔고, 독일의 기갑사단들은 러시아 대평원을 먼지를 자욱하게 올리며 소련군을 격파하고 거침없는 진격을 계속해 갔다. 개전 후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국경 지역의 주요 도시들인 민스크, 스몰렌스크가 독일군 손에 떨어졌고, 여기서 격파되거나 노획된 소련군 전차만 3,000 여대에 가까웠다. 숨 쉴 틈 없이 독일군의 철퇴는 키에프를 포위한 데 이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레닌의 이름을 딴 전략 도시, 레닌그라드를 향해 떨어져 왔다.

훈장 이름의 유래

전투를 준비하라!

콜로바노프와 그의 승무원
콜로바노프(가운데)와 그의 승무원들. 뒤에 KV-1 전차도 보인다.

 

 레닌그라드에 대한 독일군의 공격은 1941년 7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단 접근해 오는 독일 북방군 집단 주력을 맞아 소련군은 레닌그라드 주위의 지역에서 처절한 방어전을 펼치는 양상이 전개된다. 독일군은 7월 내내 차근차근 레닌그라드 주위의 주요 방어 거점을 함락시키며 전진해 왔고, 소련군의 저항은 확실히 전진 속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는 있었다. 독일군 사령부의 우회 작전 판단 오류로 부대 기동이 더뎌져 소련군을 도운 점도 있었지만, 어쨌든 독일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8월이 되어 찌는듯한 대평원의 열기 속에서도 전투는 계속되었는데, 독일군의 눈은 레닌그라드 앞의 크라스노바데스크(Krasno
gvardeysk)를 향하고 있었다. 철도가 지나는 이 지역은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교통의 요충이었고 도로가 겹쳐 있었다. 바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독일군 제1, 6, 8 전차사단이 덜커덕거리며 굴러오고 있었다.

콜로바노프의 판단 

전차부대 장교로 상위 계급을 달고 있던 지노비 콜로바노프는 KV-1(게임 내 5단계 중전차) 중전차의 전차장으로서 개전 이래 격전을 치러오고 있었다. 8월 초반부터 독일군의 압박이 거세지던 상황이라 곧 전차를 앞세운 공세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고, 운명의 1941년 8월 18일이 다가왔다.

 그 날 콜로바노프의 탑승원들은 그들의 KV-1 전차에 AP탄(대전차용 철갑탄)을 많이 싣고 있었다. 먼저 몰려올 독일 전차들과 혈전을 벌여야 할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로바노프는 크라스노바데스크로 오는 세 갈래 길 중 자신이 한가운데 길을 맡아 방어하기로 했다. 이 당시만해도 그의 KV-1을 격파할 수 있는 독일군의 전차포란 없었고, 88mm 대공포의 직사 정도만이 그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었다. 콜로바노프는 KV-1 중전차의 차체를 잘 엄폐하고 싸운다면 독일군을 격멸하진 못해도 최대한 시간은 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칼라에 제2차대전 초기의 계급장을 착용한 콜로바노프. 
중위 시절의 모습이다.

결전을 대비하다

 중대본부에선 예프도키멘코(Yevdokimenko) 소위와 세르게예프(Sergeyev) 중위가 지휘하는 KV-1 2대로 루가(Luga) 가로를, 데그챠르(Degtyar) 소위와 라스토치킨(Lastochkin) 중위의 KV-1 2대로는 볼로소보(Volosovo)로 향하는 가도를 방어하도록 했다. 콜로바노프와 그의 탑승원들은 전차를 가도를 완만히 굽어보는 위치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땅을 파서 차체를 어느 정도 숨겼다.

 T-34 중형 전차보다도 훨씬 큰 KV-1 같은 대형 전차를 일부라도 흙 속에 묻는다는 것은 보통 노역이 아니었고, 땀에 절어가면서 간신히 작업을 마치니 그들의 전차는 탁 트인 가도를 앞에 하고 꺾이는 길가에 포탑만 내밀고 웅크린 형상이 되었다. 거기다 도로 양편은 갈대 늪지대라 전차가 우회 기동을 하기엔 부적합했다. 최적의 매복 위치였고, KV-1은 이제 포효를 할 순간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자 지원을 맡은 보병부대도 도착, 매복 위치를 잡았다.  

철갑탄 장전!

긴장 속의 여름밤이 지나가고 8월 19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슬슬 아침의 대기가 더워지려 하는 10시경, 왼쪽에서 포성이 울렸고 곧 데그챠르 소위의 무전이 날아와 그들이 독일 전차와 교전을 했음을 알렸다. 지금은 소수일 테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몰려온다면 이 길은 지옥행 고속도로가 될 터였다.

 오후 2시, 드디어 먼지를 자욱이 올리며 독일군의 대열이 길을 메우기 시작하자 포수인 안드레이 유소프(Andrey Usov) 상사가 선두의 독일군 모터사이클을 발견했지만, 중대장은 이들을 그냥 지나치게 했다. 보병들도 콜로바노프의 지시로 KV-1 중전차가 쏘기 전까지 발포 금지령을 받고 있어서 이들이 더 큰 먹이를 기다리며 웅크린 호랑이처럼 모터사이클을 지나가게 하자 드디어 기다리던 먹음직한 먹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일 제8 전차사단 소속 제10 전차연대의 전차 대열로,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가도를 내질러 레닌그라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독일군 전차 대열은 Pz.Kpfw.Ⅱ(독일 2단계 경전차), Pz.Kpfw.Ⅲ(독일 4단계 중형 전차)로 이뤄져 있었고, 달려오는 모양새가 콜로바노프의 매복을 꿈에도 생각지 않는 듯했다. 독일 전차는 가도를 달려오며 점점 더 큰 표적이 되고 있었다. 무전 연결된 대대장이' 왜 독일 전차를 그냥 지나치게 하는가? '라며 성화를 부렸지만, 콜로바노프는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선두의 독일 전차가 가도를 왼쪽으로 돌아 그들의 전면으로 나온 순간!

"발사!!"
콜로바노프의 외침이 마이크를 타고 터지자 포수인 유소프 상사가 발사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AP탄은 첫 탄에 선두 독일 전차를 폭발시켰고, 숨 쉴 틈도 없이 날아간 2번째 AP탄이 두 번째 독일 전차를 그 자리에 주저앉게 했다.이어서 콜로바노프는 독일군 전차 대열 최후미의 전차를 향해 포격을 날리게 하여 독일군 대열을 순식간에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어 버린다.

 전면에선 거대한 KV-1 중전차의 포격, 가도 옆으로 달렸다간 늪의 진창에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표적이 될 것이 뻔한 상황… 게다가 치명적인 것은 대열 속의 독일 전차들이 콜로바노프의 위치를 제대로 확인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콜로바노프가 유소프 상사에게 대열 앞의 독일 전차부터 차근차근 사격하도록 명령하자 여기저기로 포를 난사하던 독일 전차의 장갑판에 AP탄이 한 발씩 치명타를 안기기 시작했다.

많은 피탄이 된 KV-1 전차의 예
수많은 피탄흔을 남긴 채 독일군에게 격파된 KV-1 중전차. 
KV-1은 이렇게 많은 포탄을 쏟아부어야 간신히 잡을수 있는 대전 초기의 괴물이었다.

 이제 독일 전차들도 콜로바노프가 탄 KV-1 중전차의 위치를 파악, 포탄을 날리기 시작해 왔다. 사격은 점점 거세져 왔지만, 20mm, 37mm 포탄은 최대 90mm 장갑을 가진 육중한 KV-1 중전차의 차체에 생채기만 내곤 튕겨 나갔다. 그러는 사이 콜로바노프의 KV-1에 달린 76mm Zis-5 전차포가 포효할때마다 독일 전차들은 불덩이로 화하고 있었다. 전차의 성능과 지형을 활용한 뛰어난 매복 전술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KV-1 중전차의 포탑 속은 환풍기가 돌고 있음에도 격렬한 포격에 의해 발사 연기로 매캐해 왔지만 장전수인 니콜라이 로덴코프(Nikolai Rodenkov) 일병은 그저 몸을 계속 움직여 폐쇄기를 열고 포탄을 밀어 넣었고 안드레이 유소프 상사는 포수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다음 표적을 찾아 발사 페달을 밟아댔다. 콜로바노프 상위 역시 페리스코프(관측용 잠망경)의 손잡이를 꽉 쥐고 조금이라도 적들의 상황을 파악하려 안간힘을 다했다. 앞뒤로 막힌 가도 위에서 독일군 전차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포격을 해왔지만, 치명타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동 공간을 마련하려 간신히 차체를 비트는 단말마의 기동을 벌이던 독일 전차들 역시 콜로바노프의 포탄을 맞고 불쏘시개처럼 타올랐다. 단 30여 분의 전투에서 22대의 독일 전차와 견인포 2문이 콜로바노프의 전차로 잿더미가 되었고, 다른 4대의 KV-1들도 적절한 매복 위치의 선점이 위력을 발휘, 이날 이 5대의 KV-1 중전차가 격파한 독일 전차는 실로 40대가 넘었다. 격전을 치른 콜로바노프의 전차에는 130여 개의 피탄 흔적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관통된 것은 없었다.

 뛰어난 판단과 지휘 능력으로 패전 일색이던 당시 소련군의 사기를 높인 콜로바노프 상위에게 소련군 총사령부는 레닌 훈장을 수여했으며, 놀라운 사격 능력을 보인 포수인 유소프 상사에게는 적기 훈장이 수여되어 전공을 치하했다. 제2차 대전 기간 내내 전차 장교로 근무한 콜로바노프는 대전에서 살아남아 전후에는 동독 지역에 소련 점령군으로써 주둔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하가 영국군 점령지역으로 망명해 버린 사건이 발생, 사회주의 군대인 탓에 사상의 의심을 받게 되며 모든 책임을 지고 예편하게 된다.

KV-1 전차 실전 사진
독일군의 침공 후 처음으로 맞은 겨울에 도시를 방어하는 KV-1 중전차.
 

 

‘월드 오브 탱크’에서의 콜로바노프 훈장


[콜로바노프 훈장]


혼자서 22대의 전차를 격파한 초인의 전공에 걸맞게 콜로바노프 훈장의 수여 조건은 만만치 않다.
혼자서 5대 이상의 상대 전차, 자주포를 상대로 싸워 승리해야 받을 수 있다.
최소 5대의 전차와 싸우며 상대 깃발을 점령했을 때 손에 넣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을까?

게임 내에서는 특무 훈장으로 분리되어있다.

 나름 '월드 오브 탱크'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봤다는 필자도 아직 이 훈장은 못 받아 봤다. 차라리 아군 깃발을 점령하던 상대 전차들에게 달려가 5대를 격파하고 드 랑글라드 훈장은 받아봤는데 말이다. 그만큼 조건이 까다롭다 할 수 있는데, '혼자서' 라는 조건이 전제되기 때문에 약간의 운이 필요한 훈장이다.

 일단 적의 깃발에 엄폐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있다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활용해 몸을 숨기며 달려온 상대 전차들과 포격전을 나눠 이긴다는 것. 거기에 아군 전차가 점령은 하지 않고 주변에서 적절한 지원을 해준다면 조건 달성률은 높아진다. 한마디로 말해 실력과 운이 동시에 필요한 훈장이라 하겠는데, 그러자면 적절한 시기에 적의 깃발을 향해 달려드는 기민함 역시 필요하다 하겠다. 다만 달려들 때 무모한 돌격이 되지 않도록 미니 맵을 살피는 습관을 들여보자.

그럼 오늘도 스타트 유어 엔진!

 

플래툰(Platoon) 이준규 기자

※ 위의 내용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글로,
워게이밍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순수 군사/역사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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